트럼프 “운하 반환”에 파나마 ‘발끈’
중남미 동맹국서 대통령·여야 “영토주권 타협 못해” … 외교 갈등 번지나

AP·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게시한 4분 30초 분량 대국민 연설(동영상)에서 “파나마 운하와 그 인접 지역은 파나마 국민의 독점적 재산”이라며 “단 1㎡도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국내 영토 주권은 결코 타협할 수 없다”며 “운하는 우리가 완전한 자율성을 가지고 관리하는 자산으로서, 당국은 중립적이고 개방적인 운영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파나마 운하에 대한 ‘환수 가능성’ 위협을 파나마 정부가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 게시글에 이어 이날 애리조나에서 열린 ‘터닝 포인트 USA’s 아메리카페스트(AmericaFest)’ 정치행사 연설에서 미국 선박에 대한 “파나마 운하 통행 요금은 터무니 없는 바가지(rip-off)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대한 기부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파나마 운하를 미국에 완전하고 조건 없이 돌려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이 운하 최대 사용자라는 점 △건설 과정에서 대규모 미국 인력·자금이 투입됐다는 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1977~1981년 재임)이 1달러에 운하 운영권을 이양한 점 등을 거론하며 미국이 파나마정부에 “엄청난 관대함”을 베풀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또 “파나마 운하가 잘못된 손에 넘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도 했는데, 이는 중국이 운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중국은 파나마 운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나, 홍콩계 기업 CK허치슨이 파나마 운하 지역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 건설(1914년 완공) 주도 후 85년 넘게 파나마 운하를 관리했다. 이후 1977년 협약 등을 거쳐 1999년에 파나마 정부에 운영권을 넘긴 바 있다.
파나마는 다방면에 걸쳐 미국 영향권에 있는 상태에서 양국 간 대등한 관계 구축을 목표로 전통적으로 ‘친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취임한 파나마 물리노 대통령은 콜롬비아·파나마 국경 지대인 다리엔 갭으로의 이주민 행렬 억제와 관련해 미국 정부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실제 파나마 운하를 다시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환수 요구 언급은 파나마 내부에서 강한 거부감을 일으켰다.
파나마 최대 야당인 중도좌파 성향 민주혁명당(PRD)은 이날 엑스에 “파나마 운하는 ‘받은’ 게 아니라 우리가 되찾아 확장한 곳”이라며 “트럼프의 용납할 수 없는 발언에 맞서 정부는 우리의 주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파나마 국회 최대 의석(71석 중 21석)을 차지하고 있는 무소속 연합에서도 “우리 민족의 기억과 투쟁에 대한 모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르네스토 세네뇨와 그레이스 에르난데스 등 다른 의원들도 독립 국가로서의 자치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파나마 운하로는 연간 최대 1만4000척의 선박이 통과할 수 있다. 전 세계 해상 무역의 3~4%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나마 운하청(ACP)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기준 미국 선적 선박은 1억5706만t(톤)의 화물을 실어 나른 것으로 집계됐다. 압도적인 1위 규모로, 2위 중국(4504만t), 3위 일본(3373만t), 4위 한국(1966만t) 선적 물동량을 합한 것보다 1.5배 이상 많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