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 전력장비 슈퍼사이클 진행중
2030년 발전 인프라 투자액 6000억달러 예상
6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 전력장비 대기업 슈나이더의 시가총액은 전년 대비 1/3 오른 1400억달러에 달했다. 일본 대기업 히타치의 시가총액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배 늘었다. 전력장비 사업부문 확대가 시장의 큰 호응을 받으면서다.
2023년 풍력터빈 사업 난항으로 고전했던 독일 지멘스 에너지 주가는 지난해엔 300% 상승해 엔비디아를 능가했다. 이 기업의 전력망기술 사업 환경이 급속도로 개선되면서다. 지멘스 에너지 CEO 크리스티안 브루흐는 “전력사업은 우리에게 핵심 성장동력”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전력장비 사업 부분을 떼어내 분사한 GE버노바의 CEO 스콧 슈트라직은 “전력분야의 슈퍼사이클(시장의 장기상승 추세)이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변압기부터 배전반, 고전압 송전케이블에 이르기까지 전력산업과 관련한 모든 제품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력망 인프라에 대한 글로벌 투자액은 2020년 약 3000억달러에서 지난해 4000억달러에 육박했다. IEA는 2030년 전력망 인프라 투자액이 약 6000억달러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같은 호황의 배경은 무엇일까. 이코노미스트지는 5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전력생산 부문의 탈탄소화가 첫번째 요인으로 꼽힌다. 상당부분 격오지에 설치되는 풍력, 태양광 발전시설은 간헐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송전선 확대는 물론 장비와 소프트웨어 투자가 필요하다.
영국정부가 2030년까지 탄소중립 전력망을 구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함에 따라 관련 전력망 사업자들은 향후 5년 동안 1000억달러를 투자해 시설을 확대하고 정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로 분류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곧 취임하지만, 미국의 신재생 에너지 투자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태양광, 풍력 발전단가가 급감한 덕분이다.
에너지 소비 구성에서 전력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이 분야 투자를 촉진하는 두번째 요인이다. IEA는 청정 원천이든 전통 원천이든 전력 수요가 향후 10년 동안 6배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전기차, 주택난방, 산업생산 등에서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1곳에서만 전기차 충전을 위한 배전시설 업그레이드에 향후 500억달러가 필요하다. GE버노바의 슈트라직 CEO는 “분자에서 전자로의 전환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말했다.
전세계 총에너지 수요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전력 인프라 투자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 세번째 요인이다. 개발도상국들 경제가 성장하면서 에어컨 등 냉방을 위한 전력 수요가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인도의 전력망 개선에 2024년부터 2032년까지 1000억달러 소요될 것으로 추산한다. 에너지 컨설팅기업 라이스타드는 중국이 전력망에 투자하는 연간 금액이 지난해 약 1000억달러에서 2030년 1500억달러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공지능(AI)과 관련된 기술대기업 투자도 에너지 수요에 일조한다. AI와 떼어놓을 수 없는 데이터센터 최신모델은 원자력발전소 1기가 생산하는 만큼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또 전력망 사업자는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기존 변압기나 송전선 등 주요 장비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일본 최대규모 도쿄전력은 데이터센터 성장세에 발맞추기 위해 2027년까지 3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인프라를 정비할 계획이다. 각국의 증가하는 데이터센터는 냉각시설, 기타 보조장비 제조사들이 덩달아 거액을 투자토록 견인하고 있다.
투자 급증의 마지막 요인은 전력망 강화다. 치명적인 태풍이나 대형산불 등 이상기후가 점점 늘고 있다. 2023년 이로 인한 전세계 피해액은 1000억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중 약 절반만 보험에 가입됐다.
지난달 미국 에너지부는 캘리포니아 전력기업 PG&E에 150억달러 대출보증을 섰다. 최근 잇따른 산불로 PG&E 전력망 인프라가 훼손되면서 이에 대한 정비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선진국 전반적으로 전력망 인프라의 노후화가 심한 편이다. 유럽의 경우 전력망 인프라의 평균 연령은 40년이 넘는다. 지멘스 에너지의 브루흐 CEO는 “전력망 인프라의 회복력이 매우 취약하다”고 말했다.
전력망 인프라 투자가 치솟으면서, 공급망에 병목현상도 불거지고 있다. 컨설팅기업 우드맥킨지 추산에 따르면 변압시설이 전세계적으로 부족해지면서 해당 장비 가격이 2020년 이후 60~80% 상승했다. 장비 인수 대기시간만 3배 늘어난 5년 이상이다.
지멘스 에너지 브루흐 CEO는 밀린 수요량이 1240억달러를 넘는다며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GE버노바가 처리해야 하는 전력장비 대기수요는 420억달러다. 2028년까지 90억달러를 투자해 시설을 확충하고 연구개발을 강화할 계획이다.
히타치 에너지사업부 역시 밀려드는 수요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년 30억달러를 시설 확충에 썼다. 2027년까지 변압장비 15억달러를 포함해 60억달러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브루흐 CEO는 “전력소비는 지속 늘고 있다. 에너지 믹스의 구성도 점차 전기로 전환되면서 관련 시장의 미래는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