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수사·탄핵 막판까지 ‘시간끌기’
정진석 비서실장 “제3장소·방문조사 가능” 대국민 호소문
야당 “마지막 몸부림일 뿐” … 여당 내에서도 “시기 놓쳐”
윤 측, 정계선 헌법재판관 기피 신청 … 헌재, 즉각 결과 고지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죄 수사와 탄핵심판에 대해 ‘시간끌기’ 전략을 막판 총동원하고 나섰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의 체포영장 재집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데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도 본궤도에 올랐지만 대통령비서실장 명의의 대국민 호소문까지 발표하며 여론에 읍소중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이렇게라도 시간을 끌면서 보수 결집을 끌어냈다고 자평할 수 있겠지만 법치주의 국가의 대통령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재집행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기습적으로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했다.
정 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6시 11분 언론공지를 통해 2500자에 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정 비서실장은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고성낙일(孤城落日)”이라며 “외딴 성에 해가 기울고 있는 처지인데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며 윤 대통령의 ‘나홀로’ 처지를 부각시켰다.
이어 “공수처와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언제든 성벽을 허물고, 한남동 관저에 고립돼 있는 윤 대통령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가려고 한다”며 “직무가 중지되었다 해도, 여전히 국가원수이자 최고 헌법기관인 윤석열 대통령을 마치 남미의 마약 갱단 다루듯 몰아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비서실장은 또 “대통령에게 특례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기 방어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며 “대통령실은 경찰 공수처와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 대통령에 대한 제3의 장소에서의 조사 또는 방문조사 등을 모두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문제는 제안의 진정성이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들은 제3의 장소 조사 제안 관련해 정 비서실장과 논의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바로 내놨다. 다만 경찰과 대통령경호처 간 충돌을 최대한 막기 위한 조율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14일 오전 대통령경호처와 경찰, 공수처는 체포영장 집행과 관련해 3자 회동을 가졌다.
여당 내에선 수사기관의 3차 출석요구가 잇따랐을 때 제안했으면 몰라도 때가 늦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제3장소 조사 등은) 참 좋고 맞는 방법이지만 시기가 좀 지났다”면서 “이제 영장이 나온 만큼 영장은 집행되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지적했다.
야당에선 ‘마지막 몸부림’으로 평가절하했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마치 예전에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이 김건희씨한테 소환당해 핸드폰 뺏기고 조사한 적 있다. 결과는 무혐의였는데 지금 그것을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그런 조사를 윤석열이 원한다는 건 체포영장 집행 직전의 마지막 몸부림을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탄핵심판 관련해서도 각종 시간끌기 전략이 총동원되고 있지만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다. 전날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를 맡은 윤갑근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에 정계선 헌법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정 재판관 남편인 황필규 변호사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 재단의 이사장이 국회 측 대리인인 김이수 변호사라는 점, 정 재판관이 법원 내 진보적 성향을 가진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자 회장을 역임한 점,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 및 법률적 판단의 예단을 드러낸 점 등을 기피 사유로 꼽았다.
정 재판관은 인사청문회 때 남편과 김 변호사의 관계에 대해 “남편은 (김 변호사에게) 급여를 받는 관계도 아니고 인사권도 없으며 오로지 사회적인 활동을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윤 변호사는 그 외에도 변론 개시에 대한 이의신청, 변론기일 5회를 한번에 잡은 것에 대한 취소 요청 등도 함께 했다. 윤 대통령측은 국회 측이 탄핵소추안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철회하겠다고 한 부분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는데 추가 준비기일 없이 정식 기일을 잡은 것이 맞느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같은 윤 대통령 측의 주장에 대한 헌재의 입장은 14일 열리는 탄핵심판 첫 변론에서 바로 고지될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이날 오전 회의를 거쳐 윤 대통령측의 주장에 대해 결론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관례를 보면 헌재가 재판관 기피신청을 인용한 사례는 없었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박 전 대통령 측에서 강일원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을 했지만 15분 만에 각하 결정된 바 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