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사모펀드 공격에 놓인 산업자본

2025-01-15 13:00:02 게재

23일 예정된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경영권 방어에 나선 고려아연측과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MBK·영풍측 이사 선임에 따라 경영권 향방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양측 입장이 팽팽해 의결권 자문사들이 잇따라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5% 정도 의결권을 가진 국민연금도 17일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열고 주주권 행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국회도 지난주 이와 관련 토론회를 갖고 논의하기도 했다.

고려아연 주총 결과는 지배구조가 취약한 산업자본의 경영권방어수단 부재와 적대적 M&A에 나서는 사모펀드의 산업자본 지배의 적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경영효율성 높일 수도 있지만 부정적 사례 많아

사모펀드의 M&A는 몇가지 긍정적 측면이 있다. 우선, 기업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현 경영진이 부실하거나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경우 새로운 투자자나 경영진이 회사를 인수해 개선할 수 있다. 또 경영권이 외부에 노출되면서 기업은 더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를 유지하려는 동기부여를 받기도 한다.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재편하고 자원을 보다 생산적으로 재배치할 계기를 제공한다. 한앤컴퍼니의 남양유업 인수는 ‘오너 독단 리스크’를 덜어낸 사례라는 평가다. 홍원식 남양유업 창업자는 대리점 갑질 등으로 물의를 빚자 한앤컴퍼니에 회사를 처분한 뒤 법적분쟁을 계속했다. 한앤컴퍼니 관리 아래 남양유업은 지난해 3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등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실제 경영현실에서는 부정적 사례가 많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2003~2004년 소버린자산운용(외국계 헤지펀드)의 SK주식회사 지분매입 시도와 2006년 칼 아이칸과 헤지펀드 파트너들이 KT&G(한국담배인삼공사) 지분 확보 시도를 들 수 있다. 주가를 올린 뒤 헤지펀드는 높은 투자수익을 올리고 빠졌다. 소버린은 당시 9000억원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는 투자에 대한 수익을 단기적으로 회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단기 재무구조 개선이나 주가부양을 우선시하기 마련이다. 이는 장기적 혁신과 성장보다는 단기 수익실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금산분리(엄격하게는 은산분리) 필요성은 주로 산업자본이 금융계열사를 사금고화하는 데서 비롯됐다. 2013년 동양그룹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사모펀드(금융자본)가 기업 경영권, 특히 적대적 M&A에 나서는 것은 정반대의 경우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비상이 걸려 있는 셈이다. 미래투자에 사용할 자원을 경영권 방어에 사용하게 되는 것은 기업경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 등에 따르면 "비교적 안정적인 경영성과를 내고 있는 고려아연을 사모펀드의 적대적 M&A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하나 논란 이슈는 고용 불안정성 증대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2015년과 지난해 인원을 비교하면 직고용과 외주ㆍ협력업체 직원 모두 줄었다. 10년간 1만명 정도 감소했다. 사모펀드는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력을 외주화하는 경우가 많다. 중·단기 이익 극대화가 우선인 사모펀드의 특성이다.

기업의 핵심자산 매각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특히 국가기간산업이나 첨단기술산업 등은 산업정책 측면에서 적대적 M&A가 적정한지 살펴봐야 한다. 세계 1위 비철금속 기업인 ‘고려아연’은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MBK파트너스사 주요 경영진의 외국인 여부도 논란거리다. 국회입법조사처는 MBK파트너스사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가 ‘외국인 투자’ 범위에 해당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 공공성 원칙에서 의결권 행사해야

이처럼 여러 논란에도 23일 임시주총에서 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의 판단과 결정에 고려아연 경영권 향방이 결정된다. 특히 4.51%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어느쪽 손을 들어줄지가 중요해졌다. 국민연금은 공공성을 기금운용 원칙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단순한 투자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경제 전반의 안정과 건강한 산업생태계 지원,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자 국가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투자가 이에 해당된다. 캐나다와 호주 연기금도 군사통신위성 전략기업과 천연가스기업 등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해외펀드 공격에서 국가전략적 이익을 반영한 의결권 행사를 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범현주 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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