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통과 후에도 ‘윤석열정부’…대행체제 한달간 9건 거부권
윤 대통령 31개월간 25건 이어 ‘연속성’ 유지
추경 편성 등 민주당 요구도 강력 거부 중
이진숙 위원장 변론종결 … 헌재 “빨리 선고”
‘한덕수 대행체제 돌아오나’ 긴장감 겹쳐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선 이후에도 거대야당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윤석열정부’가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윤석열정부의 몰락’으로 보고 민주당 지지율 상승, 쟁점법안 통과, 추가경정예산안 편성과 윤석열정부의 독주 차단 등을 기대했지만 실제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대선체제로 접어든 상황에서 진영 지지층이 양극단으로 쏠려 지지율이 박빙상황으로 회복됐다.

오히려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와 함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던 한덕수 총리 등 헌법재판소에 쌓여 있는 10개의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민주당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태세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16일 더불어민주당 모 중진의원은 “윤 대통령 체포로 한 고비가 넘어갔고 민주당 손을 어느 정도는 떠났다고 할 수 있다”며 “이제는 대선국면으로 민주당이 대선 차원에서 상황 관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인용되더라도 윤석열정부가 대선관리를 한다고 봐야 한다”며 “한덕수 총리의 탄핵심판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21대 국회에서 수적 우세에도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반성문을 쓰고 22대 국회에 들어선 만큼 절대과반의 민주당은 ‘법안 성과’에 집중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11년 8개월간 45건) 이후 최대 규모의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막아섰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의 원인제공자로 ‘입법 독주하는 민주당’을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통과로 직무가 정지된 후 ‘권한대행’으로 바통을 이어받은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거부권으로 무력화시켰다.
윤 대통령이 2년 7개월(31개월)여 동안 25건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한 달도 안 되는 ‘권한대행 시기’에 한 권한대행 6건, 최 권한대행 3건 등 모두 9건의 법안을 다시 국회로 돌려보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월평균 1건에 가까웠다면 대행체제에서는 한 달 만에 10건에 가까운 재의결 요구권을 행사한 셈이다. 다음 주에는 여당과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거부권행사를 요구한 ‘AI교과서법’에 대한 거부권행사까지 예고돼 있는 상황이다.
◆조기 추경편성 난항 = ‘민생’을 앞세워 제기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압박도 통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달 초에 4조1000억원 감액 이후 증액 없이 ‘2025회계연도 예산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면서 ‘민생추경’을 요구했지만 최 권한대행과 여당인 국민의힘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증액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불완전한 2025년 예산안’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당정은 일단 ‘예산 조기집행’에 주력하면서 이 대표의 대표상품인 ‘지역화폐 예산’을 포함한 추경안 편성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추경편성권을 갖고 있는 최 권한대행 체제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조기 추경안 편성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분위기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무더기 탄핵 결과는 민주당의 실점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민주당은 ‘여당=내란공범’으로 공략하면서 윤 대통령의 12.3 내란의 책임론을 여당에 집중시켜 진보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을 끌어오려고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선거법 등 유죄 가능성과 ‘탄핵 독주’의 부작용을 집중 공략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주도로 통과시켜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탄핵 사건은 총 10건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비롯해 한덕수 국무총리,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최재해 감사원장, 손준성 검사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상원 중앙지검 4차장검사, 최재훈 반부패수사2부장 검사 등이다. 이중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은 변론이 마무리되고 선고만 남겨놓고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선고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뭐하고 있나” =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사건도 진행중이다. 지난 13일 변론준비기일에 이어 다음달 5일이 2차 변론준비기일로 잡혔다.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검사들 탄핵 사건도 이달 중 변론준비기일이 예고돼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우선적으로 심리하겠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입장이지만 윤 대통령 탄핵심판보다 일부 탄핵심판 결과가 빨리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인용결정이 나오더라도 한 총리 탄핵심판이 기각되면 민주당에 치명적 상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이 탄핵시킨 한 총리가 ‘권한대행’ 체제로 조기 대선관리에 들어갈 경우 여론이 악화되는 등 민주당에 유리하지 않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민주당 모 의원은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이들에 대해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리면 민주당의 ‘독주’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대선국면이라는 점을 고려해 강경한 것보다는 속도조절을 하면서 대응해가야 한다”고 했다.
정성호 의원은 16일 MBC라디오에 나와 “탄핵을 주도했기 때문에 이 국정 혼란을 수습할 책임이 민주당에 있다”며 “국회 다수당이기 때문에 저는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데 부족함이 있지 않았나. 과연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고 하는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뭐 하고 있냐”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