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아세안을 시험하는 미얀마 위기
미얀마 위기 장기화, 아세안 위기로 이어져 … 미얀마 군정 아닌 국민 목소리 반영한 해법 나와야

이러는 사이 미얀마 내 인도적 위기는 더 심각한 양상을 보이며 내전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반 군부 저항세력은 ‘3대 형제단연합’ 과 ‘국민통합정부’ 등을 중심으로 연합과 제휴 및 긴밀한 군사 작전 조정을 통해 세력을 규합해 나가면서 태국, 중국 및 방글라데시 국경 지대에서 군부를 격퇴하고 점령 지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추세다. 50여년 무소불위 철권통치를 해온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붕괴가 미얀마 군정에 어떤 경고를 보낼까?
◆미얀마 소수민족 단합으로 군정 고전 = 미얀마 내 다수의 소수 민족들은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자치를 요구하며 중앙정부와 내전을 이어왔지만 지금처럼 소수 민족 간에 단합이 잘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이러한 소수 민족 그룹 간의 단합과 효율적 작전으로 군정은 고전하고 있다.
소수 민족 반군이 탈환하는 영토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소수 민족 반군 연합과 범야권 세력의 내전 승리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기도 한다. 1949년 이래 처음으로 군부의 패배가 불가능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아세안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상황에 이끌려 가면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미얀마의 수렁은 아세안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다. 외국의 비정부 전문가들의 눈에는 아세안이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무기력증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달 말 방콕에서 태국 주도로 미얀마 사태 관련 두 개의 중요한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미얀마 군정은 태국이 주도한 이러한 외교적 개입으로부터 혜택을 입었다.
◆태국, 미얀마 군정대표 초대해 회의 = 태국은 작년 말 미얀마 사태의 정치적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강화하였다. 첫 번째 회의는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는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라오스 및 태국 대표와 탄 스웨(Than Swe) 미얀마 군정의 외교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로서 주요 의제는 국경 안보와 초국경 범죄였다. 초국경 범죄 중에는 특히 불법 마약 거래와 온라인 사기 문제가 우선적 관심사로 부상하였다. 첫째 회의에 군정 대표는 초대를 받았으나 반군정 야권 세력인 국민통합정부 대표는 초대를 받지 못하였다.
연이어 개최된 두 번째 회의는 비공식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로서 이 자리에서는 아세안의 대 미얀마 평화 계획인 ‘아세안 5개항 합의사항’ 관련 사항을 재검토하였다. 첫 번째 회의에 초청받은 탄 스웨 군정 외교장관은 군부의 정치 로드맵과 인구 조사, 정당 등록 및 외국으로부터 선거 감시단 초청 의사 등 내년 총선 준비 윤곽을 브리핑 하였으며, 이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야당 그룹의 부재와 참여 금지 때문에 사기라고 일축하였다.
◆수십만명 미얀마 난민 받아들인 태국 = 이웃 국가들은 선거는 그 나라의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실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국은 미얀마 군부에 대해 선거에 모든 이해 당사자가 포함되기를 원하며, 아세안은 모든 이해 당사자를 포함하는 포용적 과정을 원한다.
미얀마 선거는 미얀마 군정 대표가 초청받지 않은 가운데 개최된 두 번째 회의에서도 아세안 회원국들 간에 논의된 내용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세안은 여전히 미얀마로부터 선거 실시에 대한 세부 사항을 기다리고 있다. 일견 이 회의들은 실용적인 것으로 보인다. 강제 이주, 국경안보 범죄 및 경제적 붕괴 등 미얀마의 내부 폭발은 지역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미얀마와 2400㎞ 국경을 접하는 태국으로서는 이러한 문제가 멀리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라 당장의 초미의 국가적 관심사 이다. 태국은 자국 국경지역에 수십만명의 미얀마 피난민을 받아들이고 태국 내에는 그 보다 훨씬 많은 미얀마 피난민들의 거주를 허용함으로써 방콕은 미얀마 사태의 신속한 해결을 모색하는데 특별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음을 주장할 수 있다.
◆캄보디아내전 중재때 모든 파벌 포함 = 태국은 1980년대 캄보디아 내전을 종료시키는 데에도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다. 이전의 태국의 외교적 노력은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캄보디아 파벌을 포함시켰지만 미얀마 해외망명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는 태국 주도 비공식 협의에 초청받지 못했다.
태국의 동기가 무엇이든 태국의 이니셔티브는 전장에서의 패배, 탈영병 증가 및 내부 알력에 직면해 있는 군정 지도자 민 아웅 흘라이닝(Min Aung Hlaining)에게 구명 밧줄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용주의라는 겉모습 아래에는 보다 깊고 보다 골칫거리인 딜레마가 놓여 있다.
미얀마 군정 대표를 포함 시킨 태국의 결정은 지독한 인권 남용에 책임이 있는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아세안의 신뢰성과 원칙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 군사 쿠데타 이래 미얀마는 대단히 파괴적인 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미얀마 군정에 정통성 부여’ 비판 = 광범위한 자의적 체포, 고문, 민간인 목표 공중폭격 및 강제징집 등 잔학 행위에 대한 유엔, 국제기구 및 현지 시민사회의 보고서는 참담한 실상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수천명의 정치범들이 가혹한 조건하에서 고초를 겪는 가운데 4천명 이상의 민간인이 피살되었으며 2백만 이상의 민간인이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카렌, 카친, 로힝야 등 소수 종족들은 전쟁범죄와 인도적 번죄를 구성하는 조직적 박해에 계속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미얀마 국민들은 경이적인 회복력을 보여주지만 군사정권은 지역과 글로벌 지도자들의 무대책에 용감해지고 있다. 반면, 인도적 지원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상기 합의사항의 실패는 군정의 이행 거부에 연유할 뿐만 아니라 위반에 대한 후과가 어떠한 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아세안의 무능에도 기인한다.
아세안의 계획은 분명한 시간표를 결여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성의 결여는 군부로 하여금 더 대담하게 행동하게 하면서 아세안의 행동을 이빨 빠진 것으로 만들었다.
◆미얀마 위기, 국제무대서 아세안 입지 약화 = 지정학적 낙진을 넘어 미얀마 위기는 아세안 정체성의 핵심을 뒤흔들고 있다. 미얀마에 대한 아세안의 결정적 행동 실패는 아세안의 인권, 평화 및 안보의 원칙을 손상시킨다. 이는 또한 글로벌 무대에서 아세안의 입지를 약화시키면서 역내 권위주의적 행위자들을 대담하게 만든다. 미얀마 이슈는 단순히 국내 이슈일 뿐만 아니라 아세안의 미래에 심대한 함축을 지닌 지역 및 국제적 도전이다.
군부의 점증하는 폭력은 국경범죄, 인신매매, 난민유입을 촉발시킴으로써 동남아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아세안이 계속 흔들리면 미얀마는 실패국가와 함께 마역거래에서 무기거래에 이르기까지 불법 경제활동의 허브(hub)가 될 위험이 있다.
2023년 10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지도자들은 미얀마가 주인이 되어 주도하는 평화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이 문구는 주권을 존중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무대책의 연막이 되었다. 미얀마가 소유하고 주도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아세안 의장국 말레이시아 대응 주목 = 진정 미얀마가 소유하고 주도하는 과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국민통합정부, 무장소수종족조직, 미얀마의 시민사회단체 및 학생 포함 모든 목소리를 포용해야 한다. 그들은 군부가 아닌 미얀마 국민의 열망을 대변한다. 이러한 회의를 주최한 태국의 결정은 미얀마의 가장 가까운 이웃 및 갈등의 낙진에 직면한 최전선국가로서의 입장을 반영한다. 국경안보, 난민유입 및 경제붕괴는 즉각적인 관심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실용주의가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비공식 대화라는 외양 하에서조차 군정 대표에게 플렛폼을 제공함으로써 태국은 군부의 지배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대군정 관여는 받아들일 수 있는 진로(path forward)라는 위험한 선례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쿠데타 이래 아세안은 의도적으로 미얀마 군정 지도자들의 비정통성을 알리기 위해 고위급 회의에 이들을 배제시켜 왔다.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금년도 말레이시아의 아세안 의장국 수임 동안 미얀마 문제를 우선 과제로 다루겠다고 서약했는데 이는 행동과 합치되어야만 환영할만한 공약이 될 것이다.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 아세안은 미얀마 군부의 ‘아세안 5개항 합의사항’ 불이행에 대해 표적 제재, 외교적 고립 및 금융·군사자원 규제와 같은 손에 잡히는 후과를 부과하여야 한다. 아세안이 모든 정통성 있는 이해 당사자들을 관여시켜야 한다.
◆아세안 정상회의 합의사항 실현 의문 = 아세안은 평화, 공정 및 인권의 원칙을 옹호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편의성에 굴복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미얀마 군정 고위 대표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공식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미얀마에서 갈수록 악화되는 인권 상황에 비추어 믿기 어려운 대응이다.
군정이 반군부 무장 단체에 통제 지역을 점차 빼앗기고 있는 가운데 군부는 민간인 대상 초토화 전술을 강화하고 있다. 군부의 증가하는 공중 및 포병 작전은 학교와 난민촌 그리고 의료센터 피폭을 초래하였으며 민간인들은 체포, 고문 및 군사적 공격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진정 미얀마가 주인이 되어 주도하는 해결책이 되기 위해서는 역내 정부들이, 현재 진행 중인 전쟁 범죄와 인도적 범죄에 책임이 있는 군정이 아니라 미얀마 국민들의 목소리에 따라 대화와 평화 구축을 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아세안은 재작년 10월 정상회의에서 5개항 합의사항 이행 진전이 매우 불충분한 수준이라는 점에 대한 우려를 시인했다. 이와 같이 아세안 회원국 정부 밖에서는 5개항 합의사항의 유용성 또는 실현 가능성에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으며 이는 아세안이 직면한 또 하나의 도전이라 하겠다.
◆말레이, 인니, 싱가폴 등 미얀마 군정 불신 = 선거 실시 문제는 군정 지도자 민 아웅 흘라이닝이 작년 11월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도 두드러지게 논의되었다. 군정이 자유롭고 공정하며 포용적인 선거를 실시할지 하는 문제에 대해 다수의 회의론이 존재한다.
국민통합정부(NUG)는 거의 확실하게 선거에 불참하려 할 것이다. NUG는 이제 불법화 되었고 유권자들에게 불공정하게 간주되는 조건 하에서 선거를 보이콧 하도록 촉구할 것이다. 태국의 접근방식과 외교적 해결 방안의 성공은 또한 다른 아세안 회원국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및 싱가포르는 미얀마 군정에 대해 깊은 불신을 표출하였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 말레이시아는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다.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미얀마 군정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적이었지만 그는 1990년대 부총리 시절 미얀마 군부 지도자들과의 건설적 관여를 옹호한 적이 있다.
◆미얀마 경제 붕괴직전, 시간 얼마 없어 = 서방 세계는 NUG와 주요 야권 정당들을 포함하지 않는 어떠한 선거도 거부할 것이다. 서방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에 정신이 팔려 미얀마 문제를 해결할 책임을 아세안에 떠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아세안이 지금까지 미얀마 사태를 해결하는데 많은 외교적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태국 주도 이니셔티브는 아세안이 미얀마 위기를 대처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틈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미얀마 경제가 붕괴 직전인 만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5년은 미얀마의 정치 상황에 있어서 결정적 한 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내전의 끝이 가능한 지 또는 그 나라가 영속적 발칸화로 저주받을 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 정권은 다른 갈래에서도 압박을 받고 있다. 군부는 세입의 원천을 상실하였으며 통화는 평가절하 되고 있다. 군대 내 응집력은 이제 강요에 의존한다. 일부 장교들은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다면 탈영하겠다고 투덜거린다. 탈영과 중국의 개입이 1949년 미얀마 군을 벼랑으로 몰고 갔다. 2025년의 질문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것 인지 아닌지 여부 일 것이다.

전 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