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테크-마가 연합’ 성공할까
실리콘밸리 부호와 보수우익들, 트럼프주의 ‘양날개’ 부상
바람처럼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제47대 미국대통령은 과연 어떤 미국을 만들고 싶은 걸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핵심으로 하는 트럼프주의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그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존경받는 국가로서의 정당한 위치를 되찾을 것이며, 전 세계의 경외심과 찬사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외쳤다.
“위대한 대통령인 윌리엄 매킨리의 이름을 마운트 매킨리로 복원할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그 이름이 있어야 할 곳이자 그 이름이 속한 곳입니다. 매킨리 대통령은 관세와 재능을 통해 우리나라를 매우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트럼프 롤모델은 매킨리 대통령
트럼프의 롤모델은 매킨리 대통령인 듯하다. 매킨리는 19세기 마지막 미국대통령과 20세기 최초의 미국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매킨리는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과 세계적 대불황의 한복판에서 미국을 주요 열강 중 하나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매킨리의 팽창주의 정책으로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쿠바와 괌 푸에르토리코 필리핀을 차지했다.
트럼프가 매킨리를 찬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매킨리 관세법’이다. 매킨리는 미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원 의원 시절인 1890년 매킨리는 관세를 38%에서 49.5%로 높이는 ‘매킨리 관세법’을 발의·제정했다. 이로써 매킨리는 ‘보호무역의 나폴레옹’이란 별명을 얻었다.
결국 트럼프는 매킨리 시절의 미국 같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관세장벽으로 경제를 살찌우고, 군사력을 더 키우고, 파나마와 그린란드 등도 미국의 영향력 아래 두겠다는 욕심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떻게 ‘MAGA 프로젝트’ 혹은 ‘트럼프주의’를 구현하려는 것일까? 실질적으로 이를 이끌어 나갈 주축 세력은 어떤 이들일까?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전날인 19일 밤(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대관식 무도회(Coronation Ball )’라는 이름의 축하파티가 열렸다. 극우성향 출판사인 ‘패시지 프레스(Passage Press)’가 트럼프의 두 번째 백악관 입성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패시지 프레스는 이날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다음과 같이 행사 내용을 알렸다.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을 축하합니다. MAGA 지도자들이 NRX(신 반동주의자)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MAGA와 기술계 우파들의 만남을 지켜보세요.”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이날 ‘트럼프 취임 축하 대관식 무도회 여는 극우들(The Far Right Is Having A ‘Coronation Ball’ At The Watergate Hotel To Celebrate Trump’s Inauguration)’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NRX는 파시즘과 군주제를 추종하는 극우파들로 종종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인사들”이라고 전했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번 대관식 무도회에는 패시지 프레스의 작가이자 블로거인 커티스 야빈과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억만장자 벤처 캐피털리스트 마크 앤드레슨, 방송인 겸 정치운동가인 잭 퍼소빅, 평론가 마이크 서노비치, 언론인 크로스토퍼 루포, 문화비평가 안나 카치얀, 배우 겸 감독인 다샤 네크라소바 등 쟁쟁한 극우인사들이 참석했다.

테크-마가 연합, 공화당 대체권력 부상
뉴욕타임스(NYT)는 18일 저널리스트 제임스 포그의 ‘테크-마가 연합은 얼마나 갈까?(How Long Can the Alliance Between Tech Titans and the MAGA Faithful Last?)’라는 제하의 기고문을 실었다. 기고문은 트럼프2기를 ‘MAGA 포퓰리즘 연합’으로 규정하면서 그 지속가능성을 진단했다.
‘TECH-MAGA 연합’ 구축에 앞장선 인물은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공동 수장이었다. 머스크는 최소 2억5000만달러(약 3649억원)를 퍼부으면서 트럼프를 지원했다. 벤처 캐피털리스트이자 팟캐스터인 데이비드 삭스와 암호화폐 거래소 설립자인 타일러 윙클보스 등이 막대한 돈과 에너지를 트럼프 진영에 투자했다. 이처럼 MAGA 진영은 세계 최고의 부호들을 트럼프 프로젝트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앤드레슨이나 머스크 같은 실리콘밸리의 타이탄들과 MAGA 진영의 동맹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NYT는 “신흥 사상가 연합은 ‘트럼프주의의 지적 날개(the intellectual wing of Trumpism)’라는 설명이 가장 적절할 것”이라면서 “고위 정치에서 사업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기존 기득권을 대체하려는 열망을 지닌 ‘새로운 반 엘리트(a new counterelite)’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MAGA진영과 기술계 우익의 연합은 미국 보수세력들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림이었다. NYT는 “미국을 재창조할 만큼 강력한 ‘하이-로우 연합’을 만드는 것이 보수진영의 계획”이라고 썼다.
‘TECH-MAGA 연합’의 중심은 ‘기술’이다. 실리콘 밸리의 기술우파들은 공화당 기득권에 대한 대체권력으로 부상했다. 이른바 ‘테크 타이탄’들이 전통적인 공화당 기부 계층의 이탈로 줄어든 달러를 채웠다. 대형 기술회사들이 트럼프 취임식 자금으로 100만달러씩을 제공했다.
“아직은 느슨한 연합 수준”
그렇다면 ‘TECH-MAGA 연합’은 얼마나 단단할까? NYT는 이들을 아직까지는 “느슨한 연합” 수준이라고 낮은 점수를 준다. 공통점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모였을 뿐이어서 경쟁과 분열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억만장자 앤드레슨과 트럼프의 책사인 배넌은 오랜 앙숙이다. 언제라도 깨질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한계는 MAGA 진영의 주력부대가 ‘반동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reactionaries and nationalists)’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예전의 미국적 삶을 되찾고 싶어한다. 그들은 기술이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화성을 오가는 로켓이나 자율주행 자동차나 인공지능(AI)보다는 1960년대 이전의 미국 문명에 더 관심이 많다. 반면 기술 우파들은 신기술로 역동적인 새 시대를 열려고 한다. 첨단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외국의 최고 인재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MAGA원조와 기술우파들 간 첫 충돌은 기술직 취업비자인 ‘연방 H-1B’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지난달 23일 트럼프가 인도 출신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스리람 크리슈난을 백악관 AI 수석정책고문으로 임명했다. 크리슈난은 “기술직 이민자들에 대한 영주권 상한선을 없애자”고 주장해온 인물이었다.
MAGA 진영의 핵심으로 꼽히는 로라 루머는 즉각 반발했다. 극우 음모론자인 루머는 H-1B 확대 정책을 “제3세계 침략자를 환영하려는 노력”이라고 비꼬았다. 기술계를 대표하는 머스크가 이에 맞섰다. 머스크는 X(옛 트위터) 계정에 “내가 스페이스X와 테슬라를 만들고, 미국을 강하게 만든 수백 개 여러 회사들을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H-1B’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MAGA 진영에서는 머스크를 반역자 혹은 세계주의자로 비난했다.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H-1B는 기술 권력자들이 이민 시스템 전체를 조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넌은 또 “머스크는 진정 사악한 사람”이라면서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 이길까? H-1B과 관련해 트럼프는 일단 머스크 쪽에 힘을 실어줬다. MAGA와 기술 우파 쪽 모두에 친분이 있는 기술 컨설턴트 라지브 칸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단기적으로는 기술 우파가 이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재능과 돈이 대부분 기술 쪽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체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다.
‘TECH-MAGA 연합’은 분명 새로운 실험이다. 그러나 NYT의 분석대로 이런 연합은 한쪽으로 힘이 쏠리면 결국 다른 쪽을 몰아내면서 무너질 수 있다. 트럼프2기가 안고 있는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돌아온 트럼프의 실험이 성공하면 한반도엔 어떤 바람이 몰려올까? 실패하면 어떤 파도가 밀려올까? 한국은 아직도 내란중이다. 누군가 이런 고민을 하고는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