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사태 53일, 국가신용등급 문제없나
외환보유액·재정건전성 등 경제지표 주요 선진국 수준
국제신평사 “정치 불안 장기화는 나쁜 영향 줄 것” 경고
내란사태가 53일째 이어지고 있다. 12.3 비상계엄 주체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와 체포로 큰 가닥은 잡혔지만 정국은 아직 불안하다.
내수부진에 시달리던 한국 경제는 치명타를 맞았다. 우리 돈의 국제 가치가 급락하고 그에 따른 환율급등과 맞물려 물가 전반이 들썩이고 있다.

특히 지난 19일 서부지방법원 난입사건은 외신들도 주목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최근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나라들이 ‘정치소요사태’를 겪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정치불안이 장기화하면 신용평가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문제가 없는 걸까. 24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외환보유규모나 재정건전성 등 경제지표로만 본다면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도 “정치불확실성이 장기화되고 법원난입과 같은 정치불안사태가 더 커지면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시각도 바뀔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가신용등급은 해당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의 가치(신뢰도)다. 은행이 신용도가 낮은 대출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매기는 원리와 같다. 정부 신용도가 낮으면 더 많은 이자를 주고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국가신인도 하락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무디스·피치·S&P)가 나라별 신용등급을 평가하고 이를 기준으로 국채 거래가 이뤄진다.
우리나라 신용등급은 대체로 17~20위권이다. S&P는 최고 신용등급 AAA를 독일·호주 등 11개국에 부여했고, 미국·대만 등 6개국에 AA+를 줬다. 한국은 그다음인 AA등급이다. 아일랜드 등과 함께 공동 18위다. 피치는 한국 신용등급을 프랑스 등과 함께 공동 21위인 AA-로 책정했다. 무디스는 아랍에미리트(UAE)와 함께 공동 15위인 Aa2로 책정했다.
국가신용등급 평가의 핵심 경제지표는 외환보유액과 국가부채다. 외환보유액은 안정적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4156억달러다. 2021년 말(4632억달러) 대비 476억달러 줄었지만 충분한 규모란 평가다. 피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경상지급액의 6.5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국가부채 규모 역시 감당할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46.2%다. 같은 신용등급 국가들의 중위값 수준이다.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25.7%) 당시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로 상승했다. 현재는 문제가 없지만, 국채 증가속도를 고려하면 재정건전성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정치 불안이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정치불안은 국가재정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주요원인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내란사태 추이와 탄핵절차, 수습과정에 주목하는 이유다. 법원 습격과 같은 소요사태가 재연된다면 국가신용등급 강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정부는 국제금융통인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을 국제협력대사로 임명하고 내달부터 주요국에서 ‘한국경제설명회’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국가신용등급 관리를 위한 범정부 회의체를 조만간 가동키로 했다. 최소한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는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