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비명계 ‘통합·포용론’ 띄우기, 이재명 대답은

2025-01-31 13:00:07 게재

김경수·임종석 “친명만으로 대선 승리 어려워”

문 전 대통령도 “비판적인 사람 포용해야” 거들어

이재명 “당내 스펙트럼 다양 … 통합행보 하겠다”

민주당 일각에서 ‘이재명 대표가 통합 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김경수·임종석 등 친문(친문재인) 인사들이 그 중심에 있다. 윤 대통령 구속 후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민주당이 탄핵찬성 여론 전체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맞물린 시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통합·포용 행보가 매우 중요하다”며 포용론을 거들고 나섰다. 이 대표는 ‘통합 행보에 나설 것’이라며 원칙적 입장을 강조했고, 일부 친명(친이재명) 인사들은 ‘당내 갈등을 부추긴다’며 비명계를 겨냥했다. 이 대표가 통합을 위한 가시적 조치에 나설 것인가가 관건인 가운데 이 대표의 선거법 2심 재판과 대선 출마를 위한 대표직 사퇴 시점 등이 변수로 꼽힌다.

발언하는 이재명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이 대표는 30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방문,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신년 인사와 정국 해법 등을 논의했다. 이 대표를 만난 문 전 대통령은 “지금과 같이 극단적인 정치 환경이 조성된 상황에서는 통합·포용 행보가 민주당의 앞길을 여는 데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은 특히 “당내에 비판적인 사람을 포용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에 이 대표는 “당내에 (정치적 의견과 관련해) 여러 스펙트럼이 있어 애로사항이 있다”면서도 “(문 전 대통령 말에) 크게 공감하고, 그런 행보를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의 통합 행보 주문은 최근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민주당에 국정을 맡길 수 있는 신뢰감을 갖기 위해서는 통합과 포용이 당 안에서 먼저 구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김 전 지사는 29일 페이스북에 “내란세력을 압도하지 못하는 제반 여론조사 지표는 큰 숙제를 주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전 실장은 지난 24일 “이재명 대표 혼자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다”며 “친명의 색깔만으로는 과반수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동연 경기지사도 같은날 “민주당은 지금 신뢰의 위기”라며 “민심이 떠나가고 있는 데 대해 민주당의 일원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비명계 인사들의 언급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여론이 절반을 훌쩍 넘은 상황에서 민주당의 정권교체에 대해선 압도하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표 취임 후 민주당 안에서 비명계 인사의 ‘포용론’ 주장이 제기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대표직 연임 후 ‘일극체제’로 평가되는 강력한 장악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당내 비판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윤석열정권과의 강대강 대치가 장기화 되면서 통합·포용 행보는 당 단합을 해치는 요소로 취급 받았고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재명 대표도 지난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당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강조했다.

김경수 전 지사가 이 대표의 문 전 대통령 방문을 하루 앞두고 장문의 글을 올린 것도 이런 정황이 반영된 ‘작심하고’ 올린 글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 비명계 핵심인사는 “보여주기식 말고 진정성 있는 통합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의 요청에 대한 이 대표의 답은 최근의 우려상황 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다분히 형식적 답변”이라며 “탄핵소추가 이뤄지고 난 후 민심의 요구를 민주당이 모두 받아 안고 가고 있는지 돌아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와 가까운 한 인사는 “(이 대표가) 정치보복을 끊고 통합행보에 나서겠다고 했는데 당 안에서 선결적으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더 큰 민주당을 만들자는 주장을 ‘내부 총질’이란 식으로 몰아붙이면 정말 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껴안고 가자는 말이 어떻게 이재명 대표에 대한 비난으로 들리는지 모르겠다”면서 “이 대표가 이런 주장을 하는 주변인사들에게 분명하게 경고하고 선을 그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친명계 안에선 비명계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비명계 인사들이 정치적 존재감을 높이려는 수준에서 제기하는 문제제기 정도로 평가절하고 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30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최근 기자회견에서도 ‘당에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했다”며 “다만 다양한 견해가 민주당이라는 생태계를 풍성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도 30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의 단결과 통합을 지키는 게 중요한 과제이자 가치”라고 말했다. 김준혁 민주당 의원은 SNS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연일 친문계 인사들이 당내 갈등을 부추기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대표적 친명계인 이연희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대선 평가는 현 민주당의 몫이지만 문재인정부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김 전 지사를 비롯한 당시 참여 인사들의 몫”이라며 “과거의 매듭을 풀자면서 자신들의 매듭은 왜 풀지 않는 것인가. 크게 하나가 되자면서 내 책임은 빼고 남의 책임만 언급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자세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비명계의 거듭된 요구를 ‘찻잔 속 움직임’으로 언제까지 대할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 안에서도 대선에 들어가기 전 ‘폭넓은 당직 기용’ 등으로 가시적인 포용행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선 출마를 위한 대표직 사퇴시 비대위가 출범할 경우 비명계 인사를 전진배치 하는 방안이다.

당 안팎에선 이 대표의 선거법 2심 재판 일정, 탄핵이 이뤄질 경우 대선 출마를 위한 대표직 사퇴 시점 등이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명계 인사들의 본격적인 세력화 시기도 이때에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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