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실용주의…“지금은 기업이 우선”
경기침체·세계 경쟁환경 고려 ‘친기업 선회 불가피’ 강조
‘반도체법 52시간 특례' 놓고 노동자 중심·기업 중심 기로
대선주자 중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실용주의’가 반도체특별법을 놓고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 대표가 조기 대선을 겨냥해 중도층에 호소하기 위한 ‘우클릭’ 전략을 구사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경계해왔던 ‘성장’과 ‘기업중심’에 중점을 두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3일 페이스북에 “지금은 기업이 우선”이라고 했다. 경기침체 국면과 세계 경쟁구도의 변화 등을 고려한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진보진영에서는 ‘민주당이 약자인 노동자 보호보다는 성장을 주도할 경영진의 편에 섰다’며 반발했다. 기존 원칙을 미세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면수정하려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금융투자소득세 과세 철회’에서 가졌던 의구심이 이제 확신으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4일 민주당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수도권의 모 다선의원은 반도체특별법에 대해 “52시간제의 예외를 허용하자는 것은 분명히 그동안 민주당이 유지해온 노동자 중심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기업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라면서 “민주당 내부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주 52시간제를 고집하기 보다는 다소 유연하게 논의를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수준까지 열어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전날 반도체특별법의 핵심쟁점인 ‘주 52시간 근무 예외 적용’에 대해 연소득 1억3000만원 이상의 고소득 연구개발자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적용을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본인이 동의하는 조건에서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정도의 유연성을 부여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느냐고 하는 의견에 저도 많이 공감한다”며 “사실 심정적으로 노동계에 가까운데 기업이 살아야 나라 경제도 산다. 지금은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정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느냐고 하니 할 말이 없더라”며 “이점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게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소비 투자 등 내수뿐만 아니라 외롭게 성장을 끌어왔던 수출까지 감소세로 전환되면서 이 대표는 친기업정책을 통해서라도 ‘우선 침체 탈출, 위기 극복’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인공지능 등 핵심산업의 세계 경쟁구도와 개발 속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트럼프 2기를 맞아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주력기업의 경쟁력이 위협받을 가능성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원칙’만 고수하다가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비수도권의 민주당 모 다선의원은 “과거 민주당은 ‘타다’의 아픈 트라우마가 있다”며 “원칙을 중시하다가 달라진 노동구조와 환경, 기술변화를 외면하게 되면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고 기술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조기 대선과 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둔 민주당이 기존 원칙과 현실(실용) 사이에서 다소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노동계와 시민단체, 진보진영의 반발은 거세다. ‘52시간 예외’를 이미 제도적으로 마련해 놨고 이를 벗어난 특례는 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고다. 그러면서 이같은 실용주의가 이 대표의 ‘대선용 전략적 포석’이라고 해석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