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경영권 승계’ 항소심도 무죄
법원 “추측·가정으로 형사처벌 안돼 … 삼바 분식회계 인정 안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관련 혐의가 무죄 선고로 2심도 마무리 됐다. 지난해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지 1년만이자, 검찰이 기소한 지 4년 5개월 만이다. 앞서 ‘국정농단’ 사건 이후 2017년 2월 구속 기소 때로 올라가면 8년 만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백강진 부장판사)는 3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1심과 같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회계부정 혐의와 관련해 2심에서 추가된 4개 혐의를 포함해 23개 공소사실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또 이 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12명과 삼정회계법인과 소속 회계사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사건은 2015년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제일모직의 주식가치를 부풀려서 삼성물산과 합병을 유리하게 이끌어 이 회장이 부당하게 경영권을 승계했는지 여부였다. 당시 삼성바이오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했는데, 장부가격 2900억원에서 시장가격 4조8000억원으로 가치가 급상승했다. 적자였던 삼성바이오도 흑자로 돌아섰다.
그러자 검찰은 여기에다 2012년 12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프로젝트 G’라는 문건에 주목해 이를 합쳐 이 회장 등이 두 회사 합병을 부당하게 실행했고, 경영권 승계를 부당하게 추진했다며 2020년 9월 1일 이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두 회사 합병에 대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삼성 미전실의 조율에 의해 합병이 결정됐다”며 “두 회사의 의사와 관련 없이 합병이 결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당시 합병 기대감으로 제일모직 주식이 부양됐던 것일 뿐, 시세조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1심과 같이 판단했다.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두 회사 합병을 추진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검찰의 주장도 받아주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은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며 1심 판단과는 달리 봤다. 그러자 검찰은 이를 반영해 공소장을 변경했고, 이 회장에 대한 혐의는 19개에서 23개로 늘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삼성바이오의 허위공시와 회계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회사측의 재무제표 처리가 재량을 벗어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유지했다. 이어 “이 사건 콜옵션은 회계처리에 문제가 제기되자, 수정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껴 그대로 유지하려 하다가 결국 삼정회계법인측의 의견에 따라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 방안을 선택한 것”이라며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가 재량을 벗어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국민연금을 상대로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합병찬성 설득은 통상적인 기업설명회(IR)에 속한다”고 짚었다. 나아가 최서원(개명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지원을 대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부당하게 행사하도록 유도했다는 검찰측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특히 재판부는 2015년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에 대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은 적법절차를 침해한 압수수색으로 수집한 위법수집증거라는 이유다.
재판부는 “검찰은 단편적인 증거를 종합 검토해달라거나 위법수집증거를 추가 고려해달라거나, 수사기관에서 자백한 사람이 법정에 와서 말을 뒤집었는데 어떻게 믿느냐는 등 증거 판단에 대해 주로 다툰다”며 “그런 수사의 어려움을 고려해도 공소사실에 대한 추측, 시나리오, 가정에 의해 형사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이어 “증거의 선별 절차를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재량 아래 둘 수 없으므로 적법성·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당연히 선행돼야 한다”며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입증하기에는 증거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아울러 삼성바이오로직스 서버 등 주요 증거들에 대해 “압수수색 과정에서 탐색·선별 등 절차의 존재 및 실질적 참여권 보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범죄 혐의와 관련성 없는 정보의 삭제·폐기 의무도 이행되지 않았고, 그로 인한 2차적 증거 역시 적법 절차의 실질적 내용을 침해해 수집된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형사사법의 정의 실현을 위해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돼야 할 사정이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심의회의 불기소 권고에도, 기소를 강행한데 대해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