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벤처펀드 출자 허용”

2025-02-05 13:00:03 게재

벤처업계, 벤처투자 돈맥경화 해소안 제시

운영방식 유사하고 운영수익률 2%대 그쳐

고용보험기금 벤처펀드 출자로 17.2% 수익

“벤처기업 앞에 놓인 현황과 환경요인이 너무나 엄중합니다. 2025년은 또 다른 도전의 해가 될 것입니다.”

성상엽 벤처기업협회장이 내놓은 올해 신년사 앞문장이다. 성 회장은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 심화 △물가 금리 환율 등 3고현상 지속 △제2기 트럼프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확산 등을 우려한 것이다.

성 회장이 지목한 엄중한 환경은 현실이 됐다. 내란사태로 고환율이 유지되고 트럼프정부의 관세 폭탄도 시작됐다. 새해벽두부터 벤처업계는 가시밭길을 가야 하는 형국이다.

이에 성 회장과 벤처업계는 “불확실성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 국회의 초월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특히 한국경제 활력회복의 방향으로 △벤처기업 글로벌화 △벤처금융 유동성 확보 △규제 개선을 제시했다. 안정적이고 건강한 벤처생태계만이 추락하는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협회는 구체적인 방안을 정리해 정부와 국회에 제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중 벤처금융 유동성 확보는 매우 시급한 문제다. 벤처투자업계는 내란사태 여파로 올해 벤처투자시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먼저 정부가 벤처투자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규제 완화와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이 그것이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총장은 “퇴직연금과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의 벤처펀드 출자를 허용하면 현재 11조원 수준의 벤처투자시장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고 4일 설명했다.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의 돈맥경화를 해소할 수 있도록 규모를 키우자는 의미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82조원으로(2023년 기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연환산 운용수익률은 2% 초반대에 불과해 수익성 개선이 시급하다.

반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공무원연금의 벤처펀드 출자수익률은 각각 13.9%, 10.1%, 9.2% 수준이다. 고용보험기금은 무려 17.2% 수익률을 실현한 바 있다.

이 총장은 “퇴직연금은 장기투자로 벤처펀드 운용 방식과 유사하다”면서 “벤처펀드 출자로 수익성 개선과 벤처펀드의 출자자 다변화라는 주요 과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퇴직연금은 비상장 주식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고 있어 퇴직연금의 벤처펀드 출자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CVC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민간의 모험자본 투자확대를 위해서는 CVC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일반지주회사도 CVC를 설립·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거래법이 개정돼 시행(2021년 12월) 됐다. 다만 공정거래법에서 규정으로 일반지주회사의 CVC 투자 확대는 제한적이다.

벤처업계는 그동안 “CVC의 외부자금 출자한도 40% 제한과 총 자산의 20%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CVC의 해외기업 투자제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규제혁신도 벤처업계의 숙원이다.

벤처기업협회는 ‘규제혁신기준국가 목표 설정’ 도입을 강력히 주문했다.

벤처기업을 대상 규제인식 조사(2022년)에서 벤처기업 73.0%가 우리나라 산업규제 강도가 외국 대비 강하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법령상 규제방식은 법·제도적으로 허용되는 사항만 나열하고 그 외에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혁신적인 신기술을 담아내지 못하고 신산업활성화를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혁신벤처기업이 글로벌 수준의 혁신기술과 아이디어로 해외에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사업모델을 보유하고도 촘촘한 규제와 높은 진입장벽에 막혀 좌절하는 경우도 종종 확인된다. 벤처업계가 “현행 규제를 글로벌 규제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온 이유다.

벤처기업협회는 “규제 선진국(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에는 없거나 과도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기 위해 먼저 ‘규제혁신기준국가’ 목표를 설정하고 글로벌 기준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유연성 확보도 벤처업계 핵심과제다.

획일적인 주52시간제는 자율적 열정과 유연성이 무기인 벤처기업의 문화를 훼손한다는 게 벤처업계의 하소연이다. 벤처기업은 특성상 신기술과 사업모델 개발에 적합한 인력을 단기간에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 단기간 집중적으로 일을 해서 성과를 내는 게 벤처의 성공방정식이다.

벤처기업협회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의 조속한 입법 필요 △핵심 근로자에 대해서는 예외 규정 도입 △근로자대표제 제도화로 노사 대등성 확보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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