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가자구상’ 미 안팎서 논란

2025-02-07 13:00:06 게재

관료들은 진화시도, 트럼프는 거듭 강행의사 … 국제사회 반발 확산

5일 가자지구 북부의 자발리아에서 파괴된 건물들 사이에 설치된 텐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난민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앉아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른바 ‘가자구상’이 미국 안팎에서 극심한 후폭풍을 부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의 회담 후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악해 중동의 리비에라로 재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주민 약 200만 명을 이집트와 요르단 등 인접국으로 강제 이주시킬 가능성을 언급하며 “필요할 경우 미군 투입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백악관과 국무부는 트럼프의 발언을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축소하며 내부적으로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이주는 재건 기간 동안의 임시 조치”라고 해명했으나, 트럼프는 6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구 이주’를 거듭 강조하며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그는 이날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싸움(fighting)의 결말이 나면 이스라엘에 의해 미국에 넘겨질 것”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또 “팔레스타인인들, 척 슈머 같은 사람들은 훨씬 안전하고 더 아름다운 공동체에 현대적 새집을 갖고 그 지역에 이미 재정착해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유대계이자 미 의회내 최고위 친이스라엘 인사로 꼽히는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트럼프의 가자구상이 중동의 불안정을 더욱 심화할 것이며 미군 파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한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아랍권과 유럽연합(EU)도 트럼프의 계획을 ‘팔레스타인인 말살 정책’으로 규정하며 일제히 반대 입장을 밝혔다. EU 집행위원회는 “가자지구는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일부이며, 두 국가 해법을 훼손하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이스라엘의 영토 합병 시도를 강력히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주민 수용을 거부하며 국제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했고, 유엔 사무총장 역시 “강제 이주는 국제인도법 위반”이라며 트럼프의 발언을 비판했다. 국제사회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트럼프의 구상은 외교적 갈등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의 발표는 미국 내에서도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민주당은 “인종청소는 반인륜적 범죄”라며 탄핵 소추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하워드 앨 그린 하원의원은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의 정의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즉각적인 탄핵 절차 개시를 주장했고,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원내대표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며, 공화당의 일방적 정책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왈츠는 “트럼프의 아이디어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접근”이라며 적극 옹호하며 정책 추진을 시도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트럼프의 구상이 미국 정치 지형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구상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지만, 중동 정세에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하마스 무장 해제와 가자지구의 국제 관리 체계 수립을 유도하기 위해 극단적인 발언을 내놓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15개월간의 전쟁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복구에는 최소 2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강한 귀환 의지를 고려할 때 실질적인 실행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가자지구 재개발 구상은 국내외의 거센 반발 속에서 ‘협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강제 이주 및 영토 장악과 관련한 그의 발언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국제법 논란을 초래할 위험성도 안고 있다. 향후 이스라엘 극우파의 대응과 아랍 국가들의 전략적 선택이 트럼프의 정책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중동의 화약고를 다시 불붙였다”며 지정학적 불안이 증폭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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