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생 근로자성
교육생 명목 정부지원 받고도 저임금에 ‘채용탈락’까지
콜센터 교육생 ‘절반’ 3개월도 못 버티고 퇴사 … 지역별 판단 제각각, 고용부 ‘근로자성 불인정’ 행정해석 혼란 가중
우리나라 노동관계법상 교육생은 연습생 인턴 실습생 등 다양하게 불리며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대법원은 실질주의 원칙 및 사실 우선의 원칙에 입각해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노무제공의 실질’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2000년 행정해석을 통해 교육생의 법적 지위에 대해 근로자성을 불인정하고 있다.
기업들은 교육한다며 정부로부터 ‘사업주 직업능력 개발훈련 지원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근로자에게는 교육생이라는 명목으로 최저임금 미만의 저임금과 ‘채용 탈락’이라며 사실상 해고까지 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채용된 교육생 10명 중 3명이 3개월도 채 버티지 못한다. 교육생 제도를 악용하는 대표적인 업계인 콜센터·텔레마케팅서비스업에서는 더 심각해 절반 정도나 취업 3개월도 되기 전에 근로관계가 종료됐다. 정부 훈련지원금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7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이 콜센터 교육생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데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교육생의 부당해고까지 인정하는 판정을 내렸다. 반면 대구·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불인정을 유지하면서 판단이 갈리고 있다. 심지어 같은 회사 소속인데도 지역별로 판단이 달라졌다. 전문가들과 노동현장에서는 고용부 행정해석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은 콜센터 교육생이 제기한 진정사건에서 콜센터 아웃소싱업체에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위반을 시정하라”고 시정지시를 내렸다. 부천지청은 사용자의 지시·통제를 받는 시용(수습)근로자로 인정했다.
#. 같은해 1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서울지노위)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 데이터라벨링(콘텐츠 모니터링) 업무 위탁업체인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가 직무교육 뒤 교육생에게 구두로 채용 탈락을 통보한 것에 대해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내일신문 1월 13일자 ‘데이터라벨링 교육생도 시용근로자’ 기사 참조> 내일신문>
#. 올해 1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도 인공지능(AI)이 유해 콘텐츠를 걸러내는 데 필요한 자료를 가공·검수하는 작업을 하는 데이터라벨링 교육생을 시용근로자로 인정하고 교육기간을 시용근로계약기간으로 판단했다.
교육생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훈련지원금을 챙기고 교육생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않았던 기업들의 꼼수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은 2000년 1월 27일 고용부 행정해석을 남용해 ‘교육생’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기간 중 또는 교육수료 뒤 해고를 통보하더라도 ‘탈락’이라고 했다.
당시 고용부 행정해석은 “교육이 향후 채용에 필요한 업무 적응능력이나 적격성 여부 판단 등을 목적으로 교육의 수료 실적에 따라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등 임의성을 띤 경우라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10년간 정부 훈련지원금 받고도 “근로자 아니다” =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 더불어민주당 김주영·이용우 의원 등은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동자성 부정하고 사용자 책임 회피하는 교육생 제도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주영 의원(민주당·경기 김포갑)이 고용부로부터 받은 ‘최근 10년 사업주 직업능력개발훈련 사업 자료’에 따르면 2015~2024년까지 117만개 기업에 4조1112억원이 지원된 것으로 집계됐다. 사업주 직업능력개발훈련 사업은 사업주가 직무능력향상을 위해 직업훈련을 실시한 경우 소요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함으로써 근로자의 능력개발 향상을 도모하는 제도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정부 훈련지원금을 챙기지만 교육생들 10명 중 3명이 3개월도 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사업주 직업능력개발훈련 사업을 통해 기업에 채용된 47만1410명 중 14만2200명(30.2%)은 근속기간이 90일 미만이었다. 90일 미만 근속자의 평균 근속일수는 37.8일에 그쳤다.
교육생 제도를 악용하는 대표적인 업계인 콜센터·텔레마케팅서비스업에서는 더 심각하다. 해당 업계에 6만7345명이 채용됐는데 절반 가까운 3만861명(45.8%)이 근속기간 90일 미만이었다. 90일 미만 근속자의 평균 근속일수는 36.8일이었다. 취업 후 3개월도 되기 전에 근로관계가 종료된 것이다.
◆콜센터 교육생 하루 3만~4만원 ‘저임금 착취 = 기업들은 교육한다며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았지만 근로자에게는 교육생이라는 명목으로 최저임금 미만의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강요했다. 콜센터 업계를 예로 들면 지난해 기준 기업은 교육생 1인당 5만3920원의 지원금을 받았지만 콜센터 교육생이 하루 8시간 일하고 받는 교육비는 3만~4만원 수준이다. 교육하면서도 남는 구조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주영 의원은 “KBS 콜센터마저도 교육생에게 하루 2만원만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토론회에서는 현장증언이 이어졌다. 최초로 틱톡 데이터라벨링 교육생의 부당해고 인정 판정을 받은 김지우(가명)씨는 “원래 직무교육은 입사 후에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데 아웃소싱 업체에서만 교육생 제도를 통해 교육의 외주화가 횡행하고 있다”며 “교 육생이라는 신분을 만들어 국가 지원금을 악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교육생 과정을 거쳐 쿠팡이츠를 원청사로 두고 있는 콜센터에서 근무한 김수정(가명)씨는 “같은 회사 소속인데 지역별로 판단이 달라진다는 점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김해에서 올라왔다”며 “노동법이 지역별로 다른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서 교육생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받았다. 같은해 6월 대구지방고용노동청에서도 채용공고와 서약서 내용을 근거로 근로자성이 부정됐다.
2000년 고용부 행정해석은 업종이 다르지만 2020년 12월 9일 행정해석에서는 견습노선 운전기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이 사건은 2022년 4월 대법원 판결(2019두55859)로 확정됐다.
문재홍 서울시버스노조 대원여객지부 지부장은 교육생의 근로자성이 인정된 후 서울버스회사의 교육제도에 대해 증언했다. 문 지부장은 “서울시에서 교육기간을 근로자로 인정하자 많은 서울시 버스회사들은 교육기간을 2~3일로 축소했다”며 “시민의 생명의 안전을 내팽개치는 회사의 행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교육제도의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천국제공항도 3개월 무급으로 교육기간 운영 = 하은성 노무사(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노동자성연구분과장)는 발제에서 “교육생의 직무교육은 오직 그 회사의 해당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교육이기 때문에 범용성이 없다”면서 “이직하게 되면 다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교육생 신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근속일수가 현격하게 짧은 이유는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이라며 “정부 훈련지원금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하 노무사는 “업무 수행에 필요한 직무교육을 받는 교육생은 당연히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돼야 하는데 2000년 고용부 행정해석 때문에 업무 적격성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근로자성 부정의 근거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영훈 국립부경대 법학과 교수는 두번째 발제에서 교육생 제도에 대한 미국·일본 등 다양한 사례를 제시했다. 정 교수는 “교육생이 받는 직무교육이 누구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엄격하게 따져야 할 것”이라며 판단 기준의 정립 필요성을 촉구했다.
나아가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 소속 데이터라벨링 교육생이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사건의 의의를 검토하면서 과도적 근로관계에 있는 교육생의 보호를 위한 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토론에서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잠시만 살펴봐도 위법한 채용공고가 수두룩하다”며 “대표적인 공공기관인 인천국제공항도 3개월간 무급으로 교육기간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부 행정해석이 변화하지 않으면 문제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식적인 문서를 근거로 근로자성을 부정한 사례들을 비판하면서 “시민법을 수정한 대표적인 사회법으로서 노동법이 있는 이 시대에 교육생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취약성이 있는 교육생들의 지위를 고려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종훈 변호사(민변노동위원회 부위원장)는 “최근 법원에서도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이나 명시적 계약 유무에 관계없이 노동관계의 실질을 기준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채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을 수료해야 하는데 이걸 임의성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고용부 행정해석, 교육생 노동착취 면죄부만 줄 뿐 = 이에 대해 이창기 고용부 근로기준정책 서기관은 “행정해석이 변경돼야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현장에서 잘못 판단하지 않도록 진행 중인 진정 사안을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박미연 고용부 기업훈련지원과 사무관도 “지난해 국정감사 지적 이후 기업이 고용유지에 신경을 더 쓰도록 올해 1월에 지원 기준을 변경했다”며 “앞으로 사업주 훈련지원금이 지급되는 현장에서 근로자가 불이익 받는 사례가 없도록 점차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주영 의원은 “인천국제공항과 관세청 같은 정부·공공기관마저도 교육생에 대해 아예 무급이나 최저임금 미만을 지급하면서 교육생의 근로자성을 부정하고 있는 게 공공연한 현실”이라며 “교육생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더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만큼 근로자성에 대한 더 적극적인 논의와 보호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특히 고용부 행정해석이 대법원 판결과도 배치돼 실무상 혼란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교육생의 노동을 착취하는 회사에게 면죄부만 줄 뿐”이라며 “교육생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부천지청과 서울지노위의 결정 내용이 근로자성 인정 근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김 의원은 “콜센터 및 텔레마케팅 서비스업의 경우 90일 미만 근속자가 채용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데 사업주는 사업주 직업능력 개발훈련비는 온전히 받아가고 있다”며 “이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지원금이 오·남용 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