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역전쟁 전략은 미국 빅테크 때리기

2025-02-11 13:00:05 게재

구글·엔비디아 반독점조사에

애플·브로드컴 등 표적 부각

향후 협상 위해 ‘칩 모으기’

미국과 중국이 추가관세와 보복관세로 맞붙어 양국간 무역전쟁 2라운드가 시작된 가운데, 중국이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반독점 조사와 규제 조치를 향후 협상을 위한 대응 카드로 준비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중국의 전략에 밝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는 중국이 향후 무역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협상 수단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인 빅테크 기업 경영진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4일부터 중국산 제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한 이후 엔비디아와 구글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시작했다. 이에 더해 애플과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회사 시놉시스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소식통들의 견해다.

상하이 소재 컨설팅 업체 트리비움 차이나의 기술정책 전문가 톰 넌리스트는 포커 게임에 비유해 “협상에서 사용할 패를 확보하는 ‘칩 모으기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WSJ은 압박이 지나치면 미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가 위축되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미국이 사용했던 무역제재 방식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미국이 2020년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이 미국인과 거래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을 모방해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을 만들었다. 2022년에는 반독점법을 개정해 기업 합병 및 독점규제를 강화했다.

구글 등에 대한 반독점 조사도 이 연장선이다. 중국은 2019년 구글이 미국 규정을 준수한다며 화웨이가 모바일 기기에서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 사용을 제한한 것에 불만을 표해왔다. 엔비디아는 2022년 이후 미국의 수출 통제로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엔비디아가 2019년 인수합병 과정에서 자국 기업을 차별했는지 조사 중이다.

애플은 중국 빅테크 기업들과 갈등으로 새 압박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애플은 앱 개발자가 게임 플레이를 위해 토큰을 구매하는 등의 인앱 서비스 비용을 청구할 때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해 중국 기술 기업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중국 비디오 게임의 선두업체인 텐센트와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는 일부 앱스토어 정책이 불공정하다는 우려를 애플에 제기했다.

일부 중국 당국자들은 이를 경쟁을 제한하는 요소로 판단하고 있어 애플에 대한 조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는 중국이 반독점 규제를 통해 미국 기업들의 인수합병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퀄컴은 네덜란드 칩 제조사 NXP 반도체를 인수하려 했으나 미중 무역 갈등 속에 중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실패했다.

브로드컴은 2022년 5월 610억 달러에 달하는 VM웨어를 인수하려 했지만 이듬해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만난 뒤에야 성사됐다.

칩 설계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시놉시스는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회사 앤시스(Ansys)를 350억달러에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작년 12월 중국 반독점 당국은 시놉시스의 자료 제출이 미흡하다며 심사 절차를 중단한 상태다.

국가 안보는 중국이 미국 기업을 견제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도구다.

2023년 중국은 미국 칩 제조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대한 사이버 보안 조사를 진행한 뒤 자국 주요기업들의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금지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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