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혼다와 통합협상 결렬…"25년 전 위기와 닮은꼴"
1999년 경영위기 때도 다임러크라이슬러와 결렬
“경영진 장기집권과 내부 권력투쟁 폐해 심각해”
독자생존 난관…대만 폭스콘, 대주주 르노에 접근
일본 3대 완성차 업체인 닛산자동차와 혼다의 통합협상이 결렬됐다. 북미와 중국시장 판매 부진 등으로 심각한 경영상 위기에 몰린 닛산이 향후 독자 생존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진단이다. 이번 혼다와 통합 결렬이 1999년 독일 업체와의 통합이 결렬된 상황과 비슷하다는 분석과 함께 고질적인 닛산 내부의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닛산, 1999년 다임러쇼크 때와 닮은꼴 위기’라는 기사에서 “마치 4반세기 전과 비슷한 상황”(닛산 전 경영진)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1999년 당시 닛산은 장기화된 경영부진과 급팽창한 이자 부담, 그룹내 닛산디젤공업의 경영파산위기 등이 겹쳐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당시 닛산의 주거래은행이었던 일본흥업은행(현 미즈호은행)도 사실상 포기한 상태에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해외 자동차기업과 연계였다. 사실상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의한 흡수합병이나 자본투자 등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던 상황이었다. 이에 닛산은 당시 미국 포드자동차, 독일의 다임러크라이슬러(현 메르세데츠 벤츠그룹), 프랑스 르노와 다각적인 협상을 벌였다.

당시 일본 내에서는 최적의 대상으로 자본과 기술력이 있는 다임러 크라이슬러를 꼽았다. 협상 과정에서 다임러도 닛산의 주식 과반을 확보하는 데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닛산 내부의 경직된 자존심과 내부 권력투쟁 등에 의해 협상은 무산됐다. 닛케이는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이 컸던 당시 닛산의 태도 등으로 최종 협상이 결렬됐다”고 했다.
다임러와 협상이 결렬된 이후 닛산의 협력 대상은 프랑스 르노자동차였다. 하지만 르노는 투기적 신용등급의 닛산보다 더 신용이 낮은 기업이었다. 자본력과 기술력 등에서 닛산을 이끌만한 능력이 부족한 르노는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을 통해 경영을 주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닛산 출신 경영진과 끊임없는 갈등 끝에 사실상 쫒겨났다.
이번 혼다와 협상도 경직된 내부 조직문화를 꼽는 분위기다. 혼다는 협상 과정에서 고강도 구조조정을 주문했지만, 닛산의 계획은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대해 혼다는 닛산을 자회사로 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대등한 통합만 주장하는 닛산측이 반발해 끝내 협상이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은 “‘다임러쇼크’로 불리는 4반세기 전과 공통된 점은 닛산의 위기감 결여와 혼다가 납득할 수 있는 구조조정안에 대해 생산부문이 반발해 결렬됐다”며 “원인은 닛산 경영진의 장기 지배와 내부 권력투쟁의 폐해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닛케이 분석에 따르면, 닛산은 태평양전쟁 패전이후 일본내 노동쟁의가 왕성하던 때, 제2노조를 결성해 좌익 성향의 ‘총평’계열 기존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이 성과로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가와마타 가츠지 전 사장의 장기집권이 원인이다. 가와마타 사장은 1957년부터 16년간 최고경영자를 맡는 동안 새롭게 결성된 노조와 밀월을 유지했고, 이 과정에서 노조는 각종 인사와 신차 개발 등에 간섭해 왔다.
이후 닛산 노조는 가와마타 사장 후임자인 이시하라 쥰 사장과 격렬하게 대립했다. 노사간 대립에서 승리한 사측은 노조에 강권을 휘두르고, 미국 등 글로벌 생산체제를 확대해 최근까지 이어진 과잉생산체제의 원인이 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영국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닛산은 공장 가동률이 다른 경쟁 업체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예컨대 미국 현지 공장의 가동률은 58% 수준으로 혼다(96%)와 도요타(81%)를 크게 밑돈다. 가격경쟁이 치열할 중국내 공장 가동률은 45%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혼다와 통합이 무산된 닛산의 향후 독자 생존은 불투명하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닛산은 최근 몇년간 판매 부진에 따라 이미 시가총액 순위가 일본 완성차 업체 가운데 5위로 전락했다. 닛산은 향후 생존을 위해 필요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최소 5000억엔(약 4조7500억엔) 이상의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앞서 닛산은 지난해 11월 전세계 생산능력의 20%에 해당하는 약 100만대 수준을 감산하고, 전체 종업원의 7%에 이르는 9000명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사히신문은 “두 회사의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통합이 백지화되면서 혼다도 닛산도 향후 생존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앞날이 더 불확실한 것은 닛산이지만, 금융관계자들은 현재의 경영진으로 경영실적 개선이 가능할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편 대만의 홍하이정밀(폭스콘)이 꾸준히 닛산에 대한 경영참여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전기자동차(EV) 참여를 선언한 폭스콘은 닛산을 통해 자동차 시장에 연착륙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지난 7일 폭스콘 류양웨이 회장이 닛산 주식 매각 가능성을 놓고 르노측과 협의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르노는 지금도 닛산 주식 36%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이다.
이 통신사는 또 홍하이정밀 EV사업 책임자로 한 때 닛산에서 경영진으로 일한 바 있는 세키 준 최고전략책임자를 시켜 지난달 말 일본을 방문해 닛산 간부와 접촉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