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었다”는데 막을 기회 여러번
대전 교사 초등생 살해사건
안일·법령미비가 부른 참극
교사가 학교에서 1학년 초등학생을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가운데 이를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던 게 아니냐는 정황이 잇따라 나와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12일 대전경찰청 대전교육청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현직 교사가 저항하기 힘든 1학년 여학생을 대상으로 벌인 살인사건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 내부에서 이를 책임져야 할 교사에 의한 살인사건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크다.
현재까지 나온 수사결과 등을 살펴보면 과연 이를 사전에 막을 수 없었는지 의문이다.
우선 해당 교사의 복직과정이다. 교육청 등에 따르면 우울증을 앓던 A 교사는 지난해 12월 질병휴직에 들어간지 20일 만에 복직했다. 이 과정에서 A 교사는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정신과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했다. 이에 대해 대전교육청은 “질병휴직의 경우 휴직사유가 소멸하면 복직을 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진단이 결과적으로 오진이었다는 사실이다.
A 교사는 복직 이후 계속 이상징후를 보였고 이 때문에 사건 당일에도 서부지원교육청 관계자들이 해당 학교를 찾아 조사를 진행했다. 정신질환이나 전염병 등 교사의 특정질병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경우 오진은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정 질병의 경우 복직을 요청할 때 복수의 전문가나 공공의료기관 등의 진단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또 A 교사는 복직 이후 동료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컴퓨터를 파손하는 등 이상징후를 보였다. 여교사이고 평소 조용한 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신질환을 의심하고 즉시 분리조치해야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교육청과 학교측의 대응은 더디기만 했다. 교육청에 따르면 학교측은 이상징후 이후 A 교사를 교감 옆자리에 배치하고 수업에서 배제했다. 10일 오전 조사를 벌인 서부교육지원청에선 “연가나 병가 등을 통해 분리조치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사건은 이날 오후에 벌어졌다. 이 때문에 A 교사의 폭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학교 등이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최소한 동료교사에 대한 폭력사건이 벌어진 6일 즉시 분리조치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실제 대전교육청 등에선 사건 이후 “이런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대전교육청에선 정신·신체적 질환으로 교직수행이 어려운 교사를 교육감 직권으로 휴·면직을 권고할 수 있는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했다. 이에 대해 대전교육청은 “정신질환으로 휴직을 한번밖에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위원회에 회부하기는 어려웠다”며 “해당 교사가 원하지 않는 한 자칫 인권침해나 법적인 논란이 예상되는 만큼 신속하게 분리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하늘양은 사건 당시 오후 4시 30분까지 2층 돌봄교실에 있었다. 학원 차량이 건물 1층 현관에 도착하자 교실을 나섰다. A 교사는 이 사이 김양을 유인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1학년 여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학교측이 직접 인수인계를 해야 했던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이 시간대는 거의 학생들이 없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전교육청은 “학교마다 구조가 달라 인수인계 방식이 다르다”며 “일단 학교 안은 안전하다는 전제가 있어 인수인계에 대한 내부규정이 따로 없다”고 했다. 가장 안전하다고 전제되는 학교 건물 안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는 얘기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령이나 내부규정 등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11일 경찰에 따르면 A 교사는 지난 10일 사건 직전 흉기를 가까운 주방용품점에서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A 교사는 지난 10일 오후 학교에서 김하늘양을 흉기로 살해했다. A교사는 경찰에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함께 죽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11일 A 교사에 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정확한 범행동기 등을 수사하고 있다.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