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언제까지 연준만 따라가나…기준금리 인하 또 멈칫
물가·금융안정 비교적 정상…환율 변동성에 머뭇거려
미국 성장률과 고용 등 양호…한국은 경기 빠르게 냉각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주권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연준 결정만 바라보며 국내 경기 급랭을 방어하기 위한 적극적 통화정책에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이 이달 25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하지 못할 경우 통화정책 독립성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연준만 따라가는 한은 =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으로 통화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한은도 2020년 5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50%까지 인하해 역대 최저수준까지 내렸다. 이에 앞서 미국 연준(Fed)은 같은 해 3월 정책금리를 0.00~0.25% 수준의 사실상 제로금리 정책을 시작했다.
두나라 중앙은행은 이후 2.00%p 수준의 기준금리 격차를 유지해오다 지난해 9월 연준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1.50%p로 좁혀졌다. 이 기간 한은은 지난해 10월과 11월 두차례 연속 금리를 내리면서 통화정책을 완화 기조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연속 금리인하와 함께 금통위원들이 3개월 내 추가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고도 말했다.
다만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관세정책에 따른 고물가 재연 우려로 지난해 12월 금리를 동결하면서 한은도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특히 국내에서 12월 초 비상계엄과 탄핵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50원을 넘어서는 등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이 총재는 1월 기준금리 동결후 가진 기자설명회에서 “최근 환율이 정치적 상황으로 급등한 만큼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며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 총재는 평소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환율의 절대 수준이 아닌 변동성에 주목한다고 했던 만큼 계엄이후 급등한 환율에 주목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한은 행보는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이 연준 결정과 무관하게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펴는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각국 중앙은행은 지난해 △캐나다 중앙은행 5차례 1.75%p △유럽중앙은행(ECB) 4차례 1.25%p △스위스 중앙은행 4차례 1.25%p 등 공격적 결정을 내렸다.
익명을 요청한 한 거시경제 전문가는 “글로벌 경제에 깊이 편입된 한국경제는 미국 경제 특히 연준의 결정에 금융시장 등의 영향이 절대적인 건 사실”이라면서도 “국가주권에서 통화주권이 빠질 수 없듯이 통화정책의 독립성도 중요하다. 지금처럼 거시경제가 어려운 때 중앙은행의 적극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가, 주담대 상대적 안정 = 한은 통화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물가안정(2.0%)과 금융안정이다. 이를 통해 국민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모색하는 데 있다.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은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지속적으로 잠재성장률 이상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한은이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여건은 나쁘지 않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2.2%)은 지난해 8월(2.0%) 이후 5개월 만에 2%대로 올라섰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도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둔화 흐름을 보이고, 이후 목표 수준 근방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기준금리 완화의 발목을 잡았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등 가계대출 증가세도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주담대 증가세는 크게 둔화됐고, 올해 1월 5대 은행 가계대출은 10개월 만에 감소세를 보였다. 한때 100%를 넘던 가계부채의 명목GDP 대비 비중도 92% 안팎에서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한은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서 남는 목표는 성장률을 떠받치는 문제다. 올해 우리나라 실질GDP 성장률 전망치는 잠재성장률(2.0% 안팎)을 크게 밑돌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은은 1.6~1.7% 수준을 내다보고 있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11일 기존 2.0%에서 1.6%로 하향 수정해 전망치를 내놨다. JP모건 등 상당수 해외 투자은행은 1.3% 수준까지 내려 잡았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11일 “경제 상황에 비해 기준금리가 높은 만큼 추가로 인하해야 한다”면서 “중립금리를 대략 2%대 중반으로 보는 만큼 연 3.0%인 기준금리를 두세 차례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2월 인하 없으면 올해 경기부양 효과 제한적 = 일반적으로 통화정책의 파급효과는 시행후 2~3분기 이후에나 실물경제에 반영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은행 등 금융기관을 거쳐 가계와 기업이 금리부담을 일부 덜어 이를 소비와 투자로 연결하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러한 통화정책의 정상적 파급경로도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때이다. 미 연준이 지난해 1.00%p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하반기 이후 국채금리 등은 거꾸로 오르는 흐름도 시장금리를 결정하는 요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변수에도 중앙은행이 최대한 빠른 속도와 큰 폭으로 통화정책을 완화 또는 긴축기조로 전환하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 금융과 실물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통화정책 파급효과의 작동원리를 고려하면 올해 2월 금통위 결정은 중요하다. 한은이 지난해 10월과 11월 두차례에 걸쳐 0.50%p 인하한 효과를 더 내기 위해서는 올해 최소 2~3차례 추가 인하를 통해 기준금리를 연 2.25% 수준까지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경영학부)는 “내수가 어려울 때는 금리를 내리는 통화정책이 제일 빠르고 효과가 크다”면서 “이번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해 소비와 투자를 진작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최근 가능성이 커진) 추경 편성과 함께 쌍끌이 부양을 통해 최대한 빠른 효과를 내야 한다”면서 “적극적 통화 및 재정정책의 시기가 늦어지면 올해 남은 기간 경기 부양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총재는 지난 6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2월 인하가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라며 “금통위원들의 포워드 가이던스는 정해진 것은 아니며 새로운 증거가 입수되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2월 금통위를 앞두고 한은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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