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근원물가 0.76%↑… 작년 1월 이후 최대
계란 가격 15.2% 급등 … 주거비 0.4% 상승
고물가 확산, 관세 등 트럼프 정책에 좌우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가 시장 예상보다 더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가 주목하는 슈퍼 근원물가 상승률은 전월 대비 0.76% 오르면서 지난해 1월(0.84%)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계란 가격이 15.2% 급등하며 식품 물가 상승을 주도했고 주거비가 0.4% 올랐다.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따라 물가 상승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시장전문가들은 향후 고물가 압력의 재확산 여부는 관세정책 등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계란 가격 폭등 지속= 12일(현지시간)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5%, 전년 동기 대비 3.0% 상승했다. 시장 예상치 (0.3%, 2.9%)를 웃돈 수치다.
1월 소비자물가 중 가장 주목받은 물가 항목은 계란 가격이다. 1월 계란 가격은 전월대비 15.2%, 전년 동월 53%나 급등했다. 지난달에 이어 계란 가격의 폭등세가 진정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조류 인플루엔자 영향으로 지난해 12월 산란계가 약 1320만 마리 살처분된 것이 계란 가격 급등과 계란 품귀현상마저 초래했다. 통상적으로 계란이 각종 제과 및 빵 등의 주요 재료라는 점에서 계란값 급등이 여타 식품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 또한 전월 대비 0.4%, 전년 동기 대비 3.3% 상승했다. 시장 전망치는 0.3%, 전년 대비 3.2%이었는데 이를 소폭 웃돈 것이다. 물가 우려를 자극한 것은 헤드라인 물가보다 근원 소비자물가가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다는 점이다. 근원 지수는 대표지수에서 단기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지표로,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상대적으로 더 잘 반영한다고 여겨진다.

◆서비스 물가 상승폭 다시 확대 = 문제는 서비스 물가가 다시 상승했다는 점이다. 에너지와 식료품의 경우 변동성이 높은 가격이라는 점에서 시간을 두고 해소될 여지가 크지만 서비스물가 상승폭이 재차 확대된 것은 부담스러운 현상이다.
1월 에너지 서비스를 제외한 서비스물가 상승률은 전월대비 0.5%로 지난해 3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폭을 기록했다. 운송서비스 항목이 전월 대비 1.8%(지난해 12월 0.5%)의 큰 폭의 상승 폭을 기록한 것과 함께 주거비(Shelter) 역시 지난해 12월 0.3%에서 1월에는 0.5%로 상승폭이 확대되었다. 주거비는 전체 CPI 상승분의 30%를 차지했다. 이는 LA 산불 여파로 호텔숙박비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비스물가 상승폭이 확대로 미 연준이 주목하는 슈퍼 코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월대비 0.76% 상승하면서 지난해 1월(0.84%)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더 상승할 수 있다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달 14일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일부 철강업체는 벌써부터 가격 인상에 나섰고, 자동차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올해 한차례 금리인하 전망 =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를 보다 오랫동안 동결할 가능성이 커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시장은 올해 운이 좋아야 단 한 차례 금리 인하만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3월 금리 동결 가능성을 97.5%로 가격에 반영했다. 전일보다 2.5%p 높아졌고, 10월 금리가 25bp 이상 내려갈 확률은 61.8%다. 올 상반기 중 금리동결 가능성도 커졌다. 1월 소비자물가 발표 직전 6월 FOMC회의에서 금리동결 확률은 50.5%였지만 소비자물가 발표 이후엔 67.2%로 급등했다. 최소한 올해 상반기 중 미 연준의 금리동결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연준 인사들 “정신 번쩍 드는 지표” = 미 연준 인사들은 1월 소비자물가지수에 대해 정신이 번쩍 드는 지표라며 잇따라 우려를 표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현 인플레이션 상황에 대해 “물가 목표에 근접했지만 아직 도달하진 못했다”며 “오늘 발표된 물가 지표 역시 같은 상황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오스틴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날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이 같은 수준의 결과가 몇 달간 이어진다면 연준의 임무가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굴스비 총재는 연준 주요 인사 중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성향으로 평가받는 인사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더 적은 금리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기존보다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인 언급을 내놓기도 했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도 이날 공개 행사에서 1월 물가지표 및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와 관련해 경제 불확실성 지속을 우려하며 “추가 금리 인하는 당초 예상보다 더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황이 더욱 복잡해져 불확실성이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물가 압력이 재확산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에너지 가격과 식료품 가격은 동절기 수요 둔화와 조류 인플루엔자 진정 시 안정을 찾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러-우 종전 협상이 추가로 유가 등 에너지 가격 하락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과 잇따라 통화를 하면서 종전 협상이 시작될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이에 뉴욕증시는 1% 수준의 하락세로 출발했으나 장중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혼조세 수준으로 장을 마쳤다. 13일 오전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코스피 지수는 2550대에서 상승 출발해 장 초반 2560선 안착을 시도 중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원 내린 1452.1원으로 장을 시작했다.
이날 새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연달아 통화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가능성이 커졌다는 소식은 달러 가치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13% 내린 107.913을 나타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