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42조원 이자이익 뒤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실 폭탄'
취약부문 부실징후 커져 … 취약 금융기관 건전성 지표 악화
한은, 금융기관간 위험 전이 우려 … “무제한 유동성 공급”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초저금리 환경에서 금융권 대출 잔액이 급증했다. 올해 경기가 침체의 늪으로 빠지면 기업과 가계의 체감 이자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은행은 아직 건전성 지표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부실 폭탄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금융기관간 리스크 전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은행의 은행’으로서 최종 대부자 역할을 통해 금융안정 소방수로 나설 준비를 해야한다 지적이다.

◆팬데믹 이후 이자 부담, 연간 100조원 증가 =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1월 금융권 대출금 잔액은 2650조원 규모에 달했다. 당시 은행권 대출금리 평균이 연 3.19%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해 단순 계산하면 연간 약 75조원 규모의 이자를 부담해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2%대 저금리 환경에서 집값 폭등으로 인한 가계대출 급증과 자영업자 등을 위한 각종 정책대출이 빠르게 늘었다. 지난해 11월 기준 대출금 잔액은 2020년 1월 대비 약 40% 이상 늘어난 3721조원에 달한다. 이 기간 은행권 대출금리 평균은 4.64% 수준이다. 연간 대출 이자 부담만 17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제2금융권 대출 이자는 은행권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에 실제 이자 부담은 이 보다 더 클 수도 있다.
다만 대출잔액과 대출금리는 월간 또는 더 짧은 기간을 두고 변동성이 있고, 가계와 기업의 담보와 신용도 등에 따라 우대 및 가산금리가 천차만별이어서 실제 이자부담은 다를 수 있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기준 가계와 기업 등이 예금은행에 맡긴 수신 잔액(2632조원)과 평균 예금이자(연 2.44%)를 단순 계산하면 연간 약 65조원 가량의 이자가 지급된 것으로 추정돼 이자부담은 경감된다.
실제로 국내 은행권 대출자산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4대 은행의 지난해 총 이자이익은 약 34조3600억원, 4대 금융지주 이자이익은 41조8700억원 수준이다. 예컨대 작년 최대 실적을 낸 KB금융은 연간 30조4900억원을 이자 수입으로 거두고, 17조6600억원을 이자 비용으로 지불해 약 12조8300억원의 이자이익을 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팬데믹 기간 대출 총액이 크게 늘었고, 한은 기준금리 인상 이후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이자마진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금융자산이 부채보다 많은 기업이나 가계는 이자나 각종 투자수익이 있기 때문에 개별 차주의 이자부담을 일률적으로 추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취약한 약한고리는 부실 심화 = 한국은행은 지난해 연말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대체로 안정적”이라고 총평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취약계층이 여럿 존재한다.
자영업자가 가장 취약한 고리로 지목된다. 한은은 복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소득이 하위 30%이거나 신용점수가 낮은 이른바 ‘취약차주’에 주목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저소득 차주는 전체 자영업자의 15.8%, 저신용 차주는 7.4%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취약 자영업자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1.55%에 달해 정상적인 자영업자(0.42%)를 크게 웃돌았다.
건설업도 취약하다. 중기대출 잔액 1위인 IBK기업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중소 건설업체 연체율은 1.22%로 집계됐다. 이는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불거졌던 2022년 말(0.40%)과 비교해도 3배 넘게 늘었다. 2023년 말(1.14%) 이후 5분기 연속으로 1%대를 웃도는 수준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기업대출 연체율은 2.43%로 2020년 1분기(0.93%)에 비해 크게 늘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0.89%에서 0.95%로 소폭 늘었다. 일반은행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도 지난해 11월 말 기준 3.4%로 집계돼 전달에 이어 두달 연속 3.4%를 웃돌았다. 이는 2005년 7월(3.6%)과 8월(3.8%) ‘카드사태’ 막바지 이후 처음이다.
금융기관에서는 은행권에 비해 제2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저축은행 고정이하여신비율은 무려 10.56%로 2020년 1분기(4.73%)에 비해 두배 이상 늘었고, 상호금융은 같은 기간 2.29%에서 6.63%로 세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와 관련 한은은 금융기관 상호간 거래가 증가하면서 부실이 전염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금융기관간 부실이 전염될 위험성은 업권간 상호거래가 커지면서 특정 업권의 부실이 은행 등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분석했다.
◆실물→금융→실물, 부실 전이 위험성 커져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일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실물과 금융에 예상치 못한 복합위기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각별한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금융시장 안정성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올해 초 신년사에서 “올해 우리 경제를 둘러싼 여건은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 신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면서 수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실물과 금융시장이 복합침체에 빠져 서로 부실 위험을 전가하면서 악순환이 배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내수와 수출이 부진해 기업경영이 어려워지면 당장 기업들의 금융부채 상환에 어려움이 따른다. 기업실적이 부진하고 경영상 어려움이 커지면 고용도 감소하거나 불안정해진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체 월평균 취업자는 314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5만8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8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증가폭이 작다.
비교적 좋은 일자리로 평가받는 300인 이상 사업체의 일자리 증가세가 크게 꺾인다는 의미는 그만큼 근로자 소득 등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지난해 ‘그냥 쉬었다’는 청년층은 전년보다 2만1000명 늘어난 42만1000명에 달했다. 통계가 집계된 2003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0년(44만8000명)을 제외하면 역대 두번째로 많다. 금융부실의 잠재적 예비군이 실물 부문에서 광범위하게 양산되는 셈이다.
◆최종대부자, 긴급시 산소호흡기 역할 = 한국은행은 최종대부자로서 비상시 금융시장과 금융기관이 위험에 처하면 사실상 무제한 유동성 공급에 언제라도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정국에서 무제한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을 통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기도 했다.
한은이 국회 기재위 소속 정일영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누적 47조6000억원 규모의 RP를 매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한해 동안 매입 총액(42조3000억원)을 뛰어넘는 규모로 그만큼 금융기관의 단기 유동성 확보에 대한 수요가 컸음을 반영한다.
이 총재는 비상계엄 이후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정치적 혼란이 경제, 특히 금융시장으로 전이돼 신용경색이 발생하고 금융안정을 헤쳐 경기를 더 침체의 늪으로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경영학부)는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불안정성은 계엄과 같은 일시적 불확실성과 다른 문제”라며 “한국은행은 발권력이라는 권능을 가진 최종 대부자로서 언제라도 만일의 비상시에 대비해 금융시장을 안정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은 지난 2023년 7월 대출제도 개편을 통해 예금취급기관의 유동성 안정판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금융권에 대한 대출 담보증권의 범위를 은행채와 우량 회사채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대출 대상이 은행권으로 제한된 법적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제2금융권 개별 업권의 중앙회 등을 통해 유동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앞서 한은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졌을 때 기준금리를 0.50% 수준으로 낮추는 통화정책과 함께 각종 대출제도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