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크라 종전 협상’서방 당혹감

2025-02-14 13:00:02 게재

유럽·우크라이나 ‘패싱’ 우려 … 동결된 분쟁 또는 새로운 갈등의 씨앗 가능성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13일(현지시간)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나토 국방장관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추진이 본격화되면서 유럽을 비롯한 서방 진영이 대혼란에 빠졌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의 협상을 주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서방 국가들은 안보 주도권 상실과 러시아의 전략적 승리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종전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 동맹국들과 우크라이나에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된 점이 드러나 서방의 불신을 키웠다. 특히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유예와 2014년 이전 국경 복원을 “비현실적”이라 평가하며 러시아의 영토 점령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미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평화 유지군은 유럽과 비 나토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며 미국의 역할 축소를 시사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유럽 연합(EU)과 주요 회원국들은 즉각 반발했다.

독일 국방장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는 “협상 과정에 유럽이 배제된다면 결과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참여 필요성을 강조했고, 프랑스와 영국도 공동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주권이 보장되는 협상이 필수적”이라고 촉구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할 것을 전제로 정치적 발언권 확보를 요구하며 트럼프의 독단적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럼프의 종전 기조에 공개적 지지를 표명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젤렌스키는 트럼프와 통화 후 “주권 보장이 전제된 평화를 추구한다”고 강조했지만, 미국의 군사 지원 축소 가능성과 영토 양보 압력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트럼프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친미 성향의 발언을 쏟아내는 한편, 미국과의 광물 자원 개발 협상 체결을 연기하는 등 정치적 아부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국민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전선에서 싸우는 한 군인은 “트럼프가 군사 지원을 중단하면 버틸 수 없다”며 불안을 토로했고, 점령지에 가족이 남은 시민들은 재회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 60% 이상이 영토 일부 양보를 수용하더라도 평화를 원한다고 답했지만, 러시아의 추가 공세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전황도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상황이다. 현재 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이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서서히 진격하며 우크라이나군을 압박 중이다. 2025년 2월 기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7%를 점령했으며, 최근 쿠르스크 지역에서의 교전도 격화되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적 우세는 푸틴 대통령으로 하여금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입장을 고수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한 러시아 전문가는 “푸틴은 서방의 분열과 지친 여론을 노려 시간을 끌며 목표 달성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전환하기 위해 유가 인하를 통한 러시아 경제 압박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원유 증산과 OPEC 압박으로 유가를 배럴당 40달러 이하로 떨어뜨리려는 전략으로 러시아의 전쟁 자금 조달 능력을 약화시키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저가로 수입하면서 이 전략의 성공 여부는 불분명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에너지 협력을 강조하며 대안 마련에 나섰다.

트럼프의 독단적 종전 추진에 맞선 유럽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우선 자체 방위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U는 방위비 지출을 GDP의 5%까지 끌어올리는 계획을 논의 중이며, 영국은 우크라이나와 100년 안보 동반자 협정을 체결하는 등 자주적 안보 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 연합군 창설 논의를 재개했으며, NATO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는 “협상이 시작되더라도 단기간에 결론나지 않을 것”이라며 유럽의 장기적 개입을 예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진영 내부의 입장 차이는 극복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압박으로 유럽 국가들이 방위비 증액을 약속했지만, 실제 실행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또 트럼프 정부의 대러시아 유화 정책은 NA TO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종전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한 동결된 분쟁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힌다. 우크라이나는 점령지 상실을 인정하는 대신 유럽 주도의 평화 유지군 배치와 제한적 안보 보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주권 훼손과 유럽의 안보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군다나 3월로 예정된 미러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협상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이지만 유럽과 우크라이나의 참여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회담 장소로 유력시되며, 트럼프는 이 회담에서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강력한 반발과 우크라이나 내부의 갈등이 겹치면서 적잖은 진통과 난항이 예상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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