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낙, 세계 산업용 로봇을 리드하다
"고객의 공장 고장 안 나고, 고장 나기 전에 알리고, 고장 나더라도 바로 고친다”
현재 전세계 공장에서 430만대의 산업용 로봇이 가동 중이다. 자동차 반도체 건설기계 태블릿 PC 등 다양한 산업에서 공장 자동화 수요가 증가하면서 산업용 로봇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5.2%의 연평균 성장률(CAGR)을 보이면서 2023년 419억달러 규모에서 2033년에는 19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용 로봇시장은 스웨덴 ABB, 일본 화낙(FANUC), 야스카와 (Yaskawa)등 선도기업들이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며 AI 통합, 고급 프로그래밍,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둔 설루션으로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이 가운데 일본의 화낙은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의 23%를 점유하고 있는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의 세계 리더다. 후지산 기슭, 야마나카 호숫가(山中湖畔)의 54만평의 숲 속에 펼쳐져 있는 본사 및 공장 단지의 외벽부터 로봇, 회사 차량, 직원들의 유니폼까지 기업 컬러인 노란색으로 물들인 광경은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노란색을 ‘전투의 색’으로 삼고 있는 ‘노란색 최강 군단’이 바로 화낙이다. 후지산 기슭이라는 위치는 직원들이 연구개발과 제조에 몰두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화낙(FANUC)은 ‘Fuji Automatic Numerical Control’의 약자다. 처음에는 종합 IT업체 일본 1위를 자랑하는 후지쯔 (Fujitsu)의 사업 일부로서 공작기계나 로봇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기계를 정확하게 작동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수치제어 장치(Numerical Control) 및 서보 시스템 (Servo System)을 개발하던 부서로부터 시작됐다. 1974년 후지쯔에서 분사해 처음에는 후지쯔 화낙 (Fujitsu FANUC)이라는 사명으로 시작했는데 1982년 지금의 화낙으로 변경했다.

아이폰 본체, 화낙의 로보머신이 절삭
화낙은 기본기술인 수치제어장치, 서보, 레이저로 구성된 공장 자동화(FA) 사업, 이러한 기술을 응용한 로봇 사업, 절삭가공기,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 방전 커트기를 주력 상품으로 생산하는 로보머신의 세 가지 사업을 운영한다. 컴퓨터수치제어(CNC)는 미리 프로그래밍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공작기계의 제어 이동 정밀성을 자동화하는 제조방식으로 세계시장의 반을 화낙이 점유하고 있다. 아이폰 본체를 화낙의 로보머신이 절삭한다. 화낙이 없으면 가동되지 않을 공장이 세계에는 많이 존재한다.
화낙의 경쟁력은 ‘원 화낙(One FANUC)’ ‘제로다운 타임(ZDT, Zero Down Time)’ ‘서비스 퍼스트(Service First)’라는 세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 키워드는 ‘원 화낙’이다. 2022년 매출 기준으로 공장 자동화 13.1%, 산업용 로봇 41.9%, 로보머신 15.6%, 서비스 13.1%로 산업용 로봇의 비중이 가장 높다. 세 가지 사업 부문은 고객의 생산라인이 멈추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수를 담당하는 ‘서비스’ 부문과 함께 ‘원 화낙’으로 통합되어 제조현장에서 혁신과 안심을 제공한다.
두번째 키워드는 ‘제로다운 타임’으로 화낙만이 가지고 있는 ‘고장 나기 전에 알려주는’ 기능이다. 로봇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기계 부품 상태, 프로세스 상태, 시스템 상태, 유지보수 시기 등의 정보를 집중 관리하면서 로봇 정보의 모니터링과 예방 보수를 통해 가동률 향상에 기여한다.
이러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화낙은 “고장 안 나고, 고장 나기 전에 알리고, 고장 나더라도 바로 고친다”는 선언을 할 수 있다. 고객의 공장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것이 화낙 비즈니스의 본질인 것이다. 완벽한 제품 개발을 위한 초기 투자 비용이 높지만 좋은 품질은 보수비용을 감소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봤을 때 총비용은 적게 들어서 결과적으로 고객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이는 고객이 화낙을 선택하는 이유다.
세번째의 키워드는 ‘서비스 퍼스트’ 실천이다. 서비스 퍼스트의 정신 아래서 세계 270개 이상의 서비스 거점에서 화낙 제품 평생보수를 실시한다. 30년 이상 된 양산이 종료된 기종까지도 보수를 실시한다. 종업원 9400명 중에서 21%인 2000명이 서비스에 종사하는데 고객이 사용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라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 중심의 회사로 잘 알려졌다.
고객이 만족하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평생 보장을 하기 때문에 고객의 만족도가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서비스는 화낙의 중요한 핵심 요소이며 현재 240개 이상의 합작 자회사와 46개국 이상에 지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100개국, 270개 이상의 서비스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로봇 메이커 4강으로 스위스 ABB, 일본 화낙·야스카와, 그리고 독일 KUKA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화낙은 이상과 같은 기업 경영 키워드를 바탕으로 과거 10년간 28.3%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했다. 10%선에서 머물고 있는 경쟁사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23년 9월 100만번째 산업용 로봇을 생산한 성과는 그들의 제조능력을 보여준다.
산업용 로봇 도입은 높은 초기 투자 비용과 총소유비용(TCO)이 장애물로 작용하지만, 제조업을 넘어 건설 물류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팬데믹, 지정학적 긴장, 공급망 문제 등으로 인해 로봇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인력난이 심각한 제조업에서는 자동화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로봇시대 속에서 화낙의 행보가 주목된다. 화낙은 ‘엄밀과 투명’을 기본 이념으로, 기술개발과 품질관리에서 엄격한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투명한 경영을 추구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체불가능한 제품을 제공하며 고객 만족을 추구하는 화낙의 성장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도전과제도 있다. 협동 로봇(Cobot)이 떠오르며 덴마크 유니버셜 로보츠(Universal Robots)가 47%의 시장 점유율로 선도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AI)과 로봇의 결합이 로봇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며, 생성형 AI와 물리적 AI(Physical AI)의 융합을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엔비디아 젠슨 황이 예측한 수십억개의 휴머노이드 로봇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초기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과 윤리적 기준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경쟁사인 아스카와는 2023년 12월 미국 엔비디아와의 협업으로 개발한 AI 로봇 ‘모토맨 넥스트(MOTOMAN NEXT)’를 출시했다. 산업용에 그치지 않고 의료 식품 등 자동화되지 않은 분야를 공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고 한다. 협동 로봇에 대한 관심과 AI 통합이 전통적인 제조업을 넘어 의료 및 소매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면서 혁신을 주도하는 핵심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화낙이 자사의 첨단기술을 활용해 협동 로봇과 AI 로봇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또한 지속가능한 성장모델 구축과 내부역량 강화를 위한 R&D 투자, 전문인력 육성, 교육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 화낙이 글로벌 리더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기술 시장 조직역량 전반에서 전략적이고 유연한 접근이 요구된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선제적 투자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아직은 추격자에 머문 한국 로봇 산업
우리나라는 인구 1만명당 1012대의 산업용 로봇을 보유한 세계 1위 로봇 채택 국가다. 2위인 싱가폴의 770대에 비해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 로봇 밀도 1위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국내 산업용 로봇 시장의 80%는 외국산 제품이 장악하고 있다.
현대차가 투자한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있고 아직 대량생산 대량판매 모델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레인보우 로보틱스’의 산업용 로봇과 협동 로봇 역시 저가의 중국제품과 고가의 유럽 일본 제품 사이에 끼어 있다. 각국의 로봇업체를 견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추격해야 하는 것이 한국 로봇산업의 현실이다.
한 국가의 특정 기업을 깊이 연구하면 전세계 산업 구도와 함께 기회와 도전과제가 보인다. 화낙이 직면한 문제는 한국 로봇 업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술력과 시장 리더십을 갖춘 기업조차도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으며 AI와 협동 로봇의 부상, 글로벌 경쟁 심화, 윤리적·사회적 이슈 등은 한국 로봇산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국 로봇산업의 경쟁력이 좌우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