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기관장 나이 70세…연안해운 마지막까지 왔다”
국회서 내항선원 부족 해결위한 연안해운 생존전략 토론회
여·야 의원 20여명, 연안해운 경영인·노조 등 500여명 참여
해수부·기재부도 의견 수렴 … 실질소득 증대·선원개방 쟁점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은 전국에서 모여든 연안해운인들의 생존 몸부림으로 뜨거웠다.
이른 아침 부산 여수 인천 등 전국 연안 도시를 떠나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로 모여든 500여명의 연안 해운인들은 생존위기에 내몰린 연안해운을 살릴 방안을 이번에는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안해운사들의 조합인 한국해운조합 회원사 2300여곳 중 20% 이상이 결집했다. 이들은 선원을 구하지 못해 고사하고 있는 연안해운을 살리려면 정보통신산업이나 금융산업처럼 스타산업으로 키우든지 아니면 외국인 해기사를 고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내항선원 비과세 위해 외항선원과 다른 별도 입법 필요 = 이날 해운조합 주관으로 박덕흠(국민의힘,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 의원과 문대림(더불어민주당, 제주 제주시갑) 의원은 국회 도서관에서 ‘내항선원 부족 타개를 위한 연안해운 생존전략 대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연안해운 국적선원 현황 및 유지·확대 방안(정대율 해양수산연수원 교수) △연안해운 외국인 해기사 도입방안(정영석 한국해양대 교수) △내항해운 선원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제언(김인현 고려대 명예교수)에 대한 주제발표에 이어 이민석 해양수산부 선원정책과장, 최진규 기획재정부 소득세제과장, 박주현 에이치엔씨씨(하나마린 계열) 대표, 정경민 삼표해운(삼표시멘트 계열), 박영삼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해운정책본부장 등이 선원 고용과 선원 실질소득 향상 등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토론에서는 연안해운이 직면한 선원 고용난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연안해운(내항선)에 취업하고 있는 국적선원은 2023년 기준 7433명 중 63.5%인 4720명이 총톤수 500톤 미만의 작은 선박에 승선하고 있다. 연안해운 해기사(항해·기관사)는 5880명 중 68.7%인 4047명이 500톤 미만 선박에 승선했다.
연안상선 선박 2209척 중 선령 20년 이상 노후선 비중은 1211척으로 54.8%에 이른다. 연안해운 국적선원 취업은 2014년 이후 줄어들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선원, 특히 간부 선원인 해기사들의 고령화다. 60대 이상 항해사는 2014년 41.5%에서 2023년 55.6%로 늘었고, 기관사는 49.4%에서 59.2%로 증가했다.
여객선보다 화물선 고령화가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정대율 교수는 “지난해 4월말 기준 연안해운 국적 해기사 중 60대 이상은 75%로 항해사 71%, 기관사 79%에 달했다”고 말했다. 연안해운 해기사는 필요 인원보다 부족하고, 해가 갈수록 부족현상은 심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2년 한국해기사협회 조사에 따르면 해기사 부족인원은 2022년 589명에서 2032년 3936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부족한 내항선 선원은 선원들의 교대와 휴가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연안해운은 선원 10% 이상을 예비원으로 유지해야 하지만 3척 이하 선사는 적용받지 않는다. 국내 연안선사 중 87.3%는 선박을 3척 이하 보유(2021년 기준)하고 있고, 예비원 비율은 1.4%에 불과하다. 외항선원도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예비원 비율이 15%에 달하는 것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내항선원들은 외항선원들에 비해 절대 소득도 낮지만 외항선원들에 적용되는 비과세소득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외항선원의 경우 월 500만원까지 근로소득은 과세하지 않지만 내항선원은 해당 사항이 없다. 승선수당에 대해서만 외항선원과 같이 월 20만원 비과세 소득으로 인정하고 있다.
김인현 교수는 “내항선원들이 외항선원보다 세금 600만원을 더 납부하는 것”이라며 “잦은 입출항과 연안의 많은 위험요소로 운항에 어려움이 많지만 외국을 항해하지 않는다고 같은 선원법 적용을 받고, 해상에서 근무하지만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원을 구하기 어렵고, 고령화되고 있으며, 예비원도 부족한 현실은 해양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연안 수역에서 전체 해양사고의 92%가 발생했다. 사고원인도 충돌 안전사고 기관손상 등 인적과실과 연관있는 사고 비중이 높다. 부족한 내항선원과 해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행법으로 제한돼 있는 외국인 해기사의 내항선 승선을 허가하는 제도변화를 모색할 때가 됐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영석 교수는 “연안해운을 강력히 보호하던 대만의 경우도 내국인 선원 모집 공고를 먼저 한 후 기간 안에 채용을 못하면 그 후 외국인 선원을 고용할 수 있게 외국인 선원 고용허가와 관리규칙을 도입했다”며 “우리는 선원법, 선박직원법 등 2개 법안을 개정해 연안해운에 외국인 해기사를 도입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영삼 해상노련 본부장은 “외국인 해기사 도입은 매우 예민한 문제이고, 고용과 안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연안해운 보호정책이 강한 대만이 외국인 해기사 도입이 가능한 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에 놀랐다”고 덧붙였다.
이민석 선원정책과장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선원은 여전히 선택받기 어려운 직업”이라며 “조금씩 처우와 근무환경이 개선되고 있는 외항선에 비해 내항선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과도한 근무시간과 처우 등에 대한 불만이 계속 제기되고, 휴가 사용 등에 필요한 대체 인력인 예비원이 부족한 점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고 공감했다.
그는 “정부는 ‘한국인 선원을 우선 양성·고용하고, 남은 빈 일자리에 대해 외국인을 고용’하고, ‘우수한 선원들이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지원’한다는 원칙으로 선원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며 “노·사·정이 이런 관점에서 선원들이 오래 승선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액에 대한 비과세 적용을 위해서는 외항선원과 다른 논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진규 소득세제과장은 “외항선원은 소득세법의 국외근로자 비과세 조항의 적용을 받는데 내항선원은 이렇게 접근하기는 어렵다”며 “소득세법에 이와 다른 별도 범주를 만드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사에만 맡겨서 해결 못 해 … 정부 나서야” = 연안해운업과 외항해운업을 함께 하는 에이치엔씨씨의 박주현 대표는 토론자로 나서 “우리 회사 선장 기관장 평균 나이는 70세”라며 “연안해운은 이제 마지막까지 왔다”고 말했다. 제대로 훈련받은 선원을 구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운영하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선원 문제는 해운산업을 정보통신이나 금융산업처럼 스타산업, 전략산업으로 키워야 해결할 수 있지 비과세혜택이나 휴가 등 일부 혜택으로 청년들이 선원을 하려고 하겠느냐”며 “그렇게 못할 것 같으면 시급히 외국인 해기사들을 고용할 수 있게 해서 선원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민 삼표해운 대표는 “경제개발 시기 외화가 없으니 외화를 벌어오면 세금 안 매긴다는 논리로 외항선원 비과세가 시작됐는데 이후 외항선원 비과세는 계속 발전한 반면 내항선원은 방치됐다”며 “젊은 선원들은 내항선에 승선하려고 하지 않고 선사는 선박에 투자할 여력도 없어 선박도 늙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방청석에 있던 정승욱 알파해운 대표는 “2022년 바다의 날에 연안해운 주인은 선원이라며 관련 정책을 추진할 것을 약속했지만 그 뒤 유야무야됐다”며 “멀고 험한 바다를 건너 사람도 적게 사는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안해운을 시장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열린 토론회는 예정됐던 시간을 1시간 넘기면서까지 시종 열기가 뜨거웠다. 당초 오후 2시부터 시작하기로 한 토론회는 같은 시간대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를 고려해 30분 일찍 시작해 계획보다 1시간 30분 이상 이어졌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박덕흠, 문대림 의원 외에도 어기구(더불어민주당, 충남 당진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김기현(국민의힘, 울산 남구을) 의원 등 여·야 20여명의 의원들이 토론회에 참석, 연안해운을 활성화할 방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어기구 위원장은 “연안선사들이 없으면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할 수 없는데 선원 구하기가 어렵다”며 “이를 선사에만 맡겨서는 안되고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오늘 토론회가 열렸고, 여·야의 많은 의원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모여든 의원들이 속한 상임위원회도 소관 부처인 해양수산부를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뿐만 아니라 행정안전위원회 국방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다양했다. 해양수산부 장·차관 출신의 조승환(국민의힘, 부산 중국영도구) 박성훈(국민의힘, 부산 북구을) 의원도 참석해 제도개선에 의지를 더했고, 조 의원은 본회의 참석 후 다시 토론회에 참석, 마무리를 함께 했다.
정부에서는 송명달 해수부 차관이 참석했고 해양수산 관련 정부출연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김종원 원장이 토론회 좌장을 맡았다.
이채익 해운조합 이사장은 “토론회가 내항선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해운조합은 지난 10일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과 함께 기재부를 방문, 내·외항 선원에 대한 정부정책의 불공정한 처우에 대해 설명했다. 또 내항상선 선원도 외항상선 이나 원양어선과 같은 수준 근로소득 비과세 혜택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