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계엄으로 인해 숱한 민생·경제 일이 일어났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으로 인해)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경제와 민생에선 실제 숱한 일들이 발생했다. 그 충격과 여진은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 닥칠 파장도 만만찮아 보인다.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정국불안은 외국인의 ‘셀 코리아’(한국 주식 처분)를 부추겼다. 주가가 급락하고 원달러환율이 치솟았다. 환율급등은 수입의존도 높은 석유류 및 원부자재 가격 반등과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했다. 1400원대 중반 환율이 이어지며 기업 투자 및 수출입 리스크가 커졌다. 괜찮은 일자리인 제조업과 도소매업 취업자가 감소하는 등 고용한파도 매서워졌다.
한국경제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글로벌 투자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로도 입증됐다. MSCI는 12일 한국지수 구성 종목에서 11개사를 퇴출시켰다. 중국산 제품의 물량공세로 어려움을 겪는 석유화학 및 이차전지 종목 중심으로 밀려났다. 새로 편입된 종목은 없었다.
MSCI 한국지수 구성 종목은 과거 성장기 최대 115개를 기록했다. 2023년 8월 104개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 11월 92개로 100개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석달 만에 81개로 위축됐다. 증권업계는 이번 추가 퇴출로 1조원대 외국인자금이 이탈할 것으로 우려한다.
‘셀 코리아’ 자극하고 성장률 하락
12·3 내란사태 여파로 연말특수가 실종되고 건설경기는 더 침체했다. 그 결과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1%에 그쳤다. 한국은행 전망치(0.5%)보다 0.4%p 내려갔다. 지난해 연간 성장률도 한은 전망치보다 0.2%p 낮은 2.0%에 그쳤다.
문제는 지난해 저성장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체감경기와 경제심리가 갈수록 악화하고 대외환경도 사면초가이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1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로 하향조정했다. 지난해 11월 전망치(2.0%)보다 0.4%p 낮다. 불과 석달 사이 성장률 전망치가 0.4%p 차이 난 핵심 요인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관세정책과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다.
KDI는 미국의 관세정책에 따른 통상갈등이 격화하거나 정국불안이 장기화하면 성장률은 더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황에 따라 성장률이 1% 초반으로 내려갈 수도 있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무역 상대국에 예외없이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한국은 대미 교역품의 98%가 무관세다. 하지만 트럼프는 보조금 지급·부가가치세 영세율 등 비관세장벽과 환율정책까지 따질 태세다.
한국의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는 557억달러로 세계 8위다. 미국이 한국의 자동차 안전·환경 규정,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추진, 의약품 가격, 환율 방어를 위한 외환시장 개입 등을 트집 잡을 수 있다. 트럼프는 3월12일부터 철강·알루미늄 수입품 25% 관세 적용에 이어 우리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반도체에 대한 관세폭탄도 예고했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세계 각국이 비상이다. 일본·인도는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한국은 내란사태와 탄핵정국으로 국가 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트럼프와 전화통화조차 못한 상태다.
미국은 무역적자가 큰 나라부터 협상해 4월 2일부터 상호관세 부과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약 두달이 골든타임이다.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하는 등 국가적 통상 전략을 다루며 활동할 ‘여야정 특별기구’와 ‘경제(통상)특명대사’가 필요해 보인다.
정부와 여야 정당이 참여하는 국정협의회가 오는 20일 첫 회의를 갖기로 했다. 최상목 권한대행, 우원식 국회의장,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참석하는 4자 회동은 11~12일 하려다가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적용 예외 포함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여 무산됐다. 국정협의회에서 논의하고 여야정 합의로 통상 특별기구를 만들고, 경제특명대사도 임명해 활동하게 하자.
여야정 합의로 ‘경제특명대사’ 임명 필요
하얼빈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종합 2위를 지켰다. 이번 대회에서 따낸 금메달 16개는 겨울 아시안게임 역사상 최다 타이기록이다. 금메달의 절반을 10대 어린 선수들이 일굼으로써 내년 밀라노 올림픽 메달 전망도 밝게 했다.
많은 ‘K-시리즈’ 브랜드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입증하듯 한국은 경제와 문화, 스포츠 강국이다. 그러나 계엄 이후 민생과 경제가 외환위기 이상으로 지난해졌다.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줄 책무가 있다.
정권재창출이든 정권교체든 국민은 멍들지 않은 경제, 경쟁력 있는 산업, 활기 있는 민생, 불안하지 않은 사회를 원한다. 경제가 망가진 뒤 집권하면 뭐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