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성과 분배’에 들떠 있을 때가 아니다

2026-05-29 13:00:03 게재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사업부 직원들에게 1인당 평균 6억원 가까운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한 결정을 놓고 사회적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다. ‘성과급 전쟁’이 카카오 현대자동차 HD현대중공업 삼성바이오 등 다른 대기업들로 번지고 있고, 삼성전자 내 다른 사업부에서는 ‘차별지급’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메모리사업부 성과급의 1%인 600만원 상당 자사주만을 받게 된 DX(스마트폰·생활가전·TV 등) 사업부 직원들은 법무법인까지 선임해가며 조직적인 반대운동에 나섰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동조합조직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성과를 배분받아야 한다며 논쟁의 지평을 넓혔다. “대기업의 성과가 원청 내부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며,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도 성과의 과실이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성과급 지급이 부른'사회적 여진'

정부와 정치권도 토론 대열에 나섰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기업의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국민배당금’ 제도를 설계하자”고 제안했고,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기업들의 초과이익 배분 방식을 사회적 의제로 다루겠다”고 했다.

‘사회적 재분배’ 논의가 곳곳에서 제기될 만큼 대한민국의 소득구조는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산업 정규직 근로자의 월 임금 총액은 평균 457만원으로 비정규직(192만원)보다 265만원 많았다. 시간당 임금 총액에서도 정규직은 2만8599원, 비정규직은 1만8635원으로 9964원 차이가 났다. 2020년 5716원이었던 격차가 불과 5년 새 이렇게 커졌다. 올해 삼성전자를 필두로 대기업들의 ‘성과급 잔치’가 이어짐에 따라 격차가 더욱 벌어질 판이다. 대·중소기업과 정규직·비정규직 간 급여 차이가 이렇게 양극화로 치닫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얽혀 있지만 우리 경제 전반의 활력이 저하되면서 특정 산업에 대한 쏠림현상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는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성장률 수출 주가 등 주요 경제지표가 화려한 성적을 뽐내고 있지만 대부분 반도체 초호황 덕분이다.

올해 1분기(1~3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상위 5대 수출기업의 수출액이 957억달러를 기록, 전체 수출액(2199억달러)의 43.5%를 차지한 게 단적인 예다. 전체 수출기업(6만7531개) 가운데 0.007%에 불과한 5개 기업이 한국 수출의 절반 가까이 기여했다. 업종별로 보면 한국 산업의 ‘초(超)편식’ 양상이 더 뚜렷해진다. 지난 4월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월에 비해 173.5% 증가한 반면 자동차(-5.5%), 자동차부품(-6%), 일반기계(-2.6%), 가전(-20%) 등은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반도체를 뺀 한국 경제의 민낯은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다.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도 그런 현실을 일깨워줬다. 구직기간이 6개월을 넘긴 장기 실업자가 지난달 10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명이나 늘어났다. 또 전체 실업자에서 장기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중(12.7%)이 2004년 이후 22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실업자의 절반 이상(56.5%)이 한창 일해야 할 20,30대라는 사실이 더욱 참담하다. 15~29세 청년층의 일자리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이들 청년층 고용률은 정점이었던 4년 전보다 4.1%포인트나 하락한 43.7%을 기록, 60세 이상 고용률(47.2%)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개선되기 보다 앞으로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일자리를 떠받쳐 온 제조·건설업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AI) 기술이 도입되면서 신입사원들이 맡았던 단순 업무가 AI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어서다.

역량 갖춘 기업가들이 창의력 발휘할 수 있는 제도 정비가 급선무

이런 현실을 똑바로 보지 않은 채 예외적 호황을 누리는 극히 일부의 사업장에서 터져 나오는 분배 논란에 온 나라가 휩싸인 듯한 모습은 정상적이지 않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이 그렇다. 개별 기업문제에 숟가락을 얹으려하지 말고 더 많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보다 많은 ‘반도체산업’이 나래를 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국정을 맡은 사람들의 책무다. 그러려면 역량을 갖춘 기업가들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급선무다. 오늘날 세계 산업을 이끌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미국정부가 산업정책을 설계하거나 지원한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길 필요가 있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