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다카이치 웃음 뒤의 불편한 진실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5월 19일부터 20일까지 정상 간 셔틀외교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에서 열린 이번 방한의 주요 목적은 미중갈등과 긴박한 지정학적 리스크 앞에서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모색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일본 내 전문가들은 문재인-아베정권 시절의 극심한 대립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대통령의 행보가 예상외로 실리적이고 안정적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에 발맞추어 다카이치 총리 역시 조세이탄광 문제 대응이나 야스쿠니신사 방문 자제 등 관계개선을 위한 제스처를 취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한일관계의 온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양국 정권이 국내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언제든 상대국을 이용할 수 있다는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일본정권이 내각 지지율 확보를 위해 배외(排外)정서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문제는 다카이치내각의 국내 기반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취임 직후 80%를 웃돌던 지지율은 최근 50%대로 추락하며 3개월 연속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본 국민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할 실효성 있는 경제정책이지만 현실은 엔저와 중동정세 악화로 인한 고물가 속에 가계소득이 10년째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민생경제 위기에도 극우적 이슈에만 집착
민생경제가 도탄에 빠진 상황에서도 다카이치정권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 ‘스파이방지법’이나 ‘국기손괴죄’ 창설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는 거센 반발과 대규모 시위를 자초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중동전쟁의 영향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프타 부족 위기는 일본 내부의 우려를 극대화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로 수입 의존도가 70%에 달하는 나프타의 일본 국내 재고는 고작 20일분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프타 가격이 전년 대비 70% 이상 폭등하면서 플라스틱 섬유 의료기기 등 전방위 산업이 타격을 입었고 신축 주택 인도 지연과 도장공사업의 도산 급증 등 실물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 총리는 전후 평화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개헌 논의에만 집착하며 국내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최근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상대 후보 가짜 영상 유포 방조 의혹까지 더해져 도덕성과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한국 외교가 가장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은 다카이치 총리의 대외정책에 내포된 위험한 이면성이다. 보수강경파인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 트럼프행정부의 노골적인 호르무즈 해협 함선 파견 및 비용분담 요구를 받고, 대외적으로는 미일동맹의 공고함을 과시하며 미소를 지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여론의 반전감정과 법적제약을 의식해 자위대 파견에 선을 긋는 ‘면종복배(面従腹背)’의 태도를 취해왔다. 이러한 겉과 속이 다른 강경포즈는 동아시아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조시키는 불안요소다.
특히 대만문제를 둘러싼 다카이치 총리의 중국 자극 행보는 한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 유사는 곧 일본 유사”라는 극단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중국과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상시적인 안보 리스크를 안고 지리적으로 중국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과도한 대중(對中) 도발은 역내 정세를 걷잡을 수 없이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중일관계의 냉각이 한·미·일 협력이라는 틀을 통해 한국에 고스란히 ‘안보적·경제적 비용’으로 전가되는 상황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얼리즘 외교’가 한일관계 안정성 담보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기꺼이 믿는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안동 방문을 통해 한일 결속이라는 무대를 연출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계기로 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화사한 웃음 뒤에는 떨어지는 지지율, 나프타 위기로 신음하는 민생경제, 그리고 지지층 결집을 위한 개헌 집착이라는 심각한 내우(内憂)가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 총리의 화려한 외교적 수사나 포퓰리즘적인 퍼포먼스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다카이치 총리가 처한 국내적 취약성과 미국 추종 외교의 한계를 냉철하게 간파해야 한다.
상대방의 취약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철저히 국익에 기반해 대등하게 부딪치는 ‘리얼리즘 외교’만이 한일관계의 진정한 안정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