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소 규제 완화 뒤 토양오염 위해성 평가 ‘첩첩산중’

2025-02-17 13:00:03 게재

전문기관 8곳에 불과, 대책 마련 시급 … 오염토 불법 반출 단속, 지하수 통합 관리 강화 등 해묵은 숙제 여전

최근 재건축 등 건설 시장에 때아닌 ‘불소’ 논쟁이 불거졌다. 불소 관리 기준에 따라 정화비용 공사기간 분양가 등이 큰 폭으로 달라지므로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불소 규제 완화로 일단락됐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불소 토양오염우려기준을 완화했다. 토양오염우려기준은 사람의 건강·재산이나 동물·식물의 생육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토양오염 기준이다.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는 2023년 9월 환경부에 불소 규제 관련 권고를 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선진국과 같이 부지별 실정에 맞게 토양오염을 관리하는 위해성 평가제도 중심 정화체계로 전환을 추진하라”고 밝혔다.

위해성평가는 환경 유해 인자가 환경에 배출되거나 생활 환경에서 사용될 때 인체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추정하는 것이다. 위해성평가 결과를 토양정화 범위와 시기 및 수준 등에 반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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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업계 관계자는 “토양 분야 위해성평가의 경우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기법 등이 미흡한 상황”이라며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전면적으로 해외 체제로 전환하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평가 기관이나 전문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 토양 분야 위해성평가 기관은 8곳(2024년 8월 31일 기준)에 불과하다. 토양환경보전법 제23조 등에 따라 위해성평가 기관 등 토양관련전문기관으로 지정을 받아야만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토양 위해성평가 제도가 도입된 시기는 2005년이다. 이후 2011년에 위해성평가 기관 지정 근거를 신설했다.

14일 환경부 관계자는 “토양오염물질 위해성평가 지침 등이 있고 올해 안에 관련 지침 고도화를 추진 중”이라며 “적용 대상이 확대되는 등 위해성평가 시장이 커지면 평가 기관도 함께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토양 오염 관리 체계가 비슷한 국가는 일본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의 ‘지질 기원 토양오염 적정관리를 위한 정책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자연 기원 토양오염의 경우 ‘자연 유래 특례구역’으로 관리한다. 지질학적으로 비슷하게 오염이 되어있기 때문에 일정 구획만을 봉쇄하는 건 효과적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토양오염 조사 구역은 크게 조치실시구역과 형질변경 시 신고구역 등으로 나뉜다. 조치실시구역은 오염 제거 등의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는 구역으로 원칙적으로 형질변경이 금지된다. 형질변경 시 신고구역은 토양오염은 있지만 건강피해 우려가 없는 구역이다.

하지만 형질변경을 한다면 신고가 필요하다. 건강피해 가능성이 있을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주변 토지에서 지하수 음용 여부 △일반인 출입 여부 등이다. 또한 일본의 지질 기원 토양오염 판단을 위한 요건은 △오염 상태가 지질학적으로 동질한 상태로 퍼져 있을 것 △제2용출량 기준에 적합할 것 등이다.

◆규제 완화로 토양정화업계 타격 = 한국IR협의회의 토양정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토양환경 시장은 반환미군기지 정화사업(LPP)과 남북송유관 정화사업(TKP)이 시작된 2008년부터 전체적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2007년 1000억원 시장에서 2011년에는 5558억원 규모를 형성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토양정화 사업은 수요를 발굴하는 행위보다는 선행적인 요인이 있어야 수요가 발생되는 파생수요에 기반한 산업”이라며 “정부 정책과 환경규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 산업으로 토양정화 기술 개발 및 고도화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불소 규제 완화로 토양정화 업계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환경부가 위해성평가계획서 작성 및 사후관리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토양오염물질 위해성평가 지침’으로 정한 뒤 불소 정화 대상 수가 증가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만 2018년 대비 2022년 6배 늘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8~2022년 수도권 지역의 불소 정화비용은 약 250배 늘었다.

13일 한국토양정화업협동조합은 “토양 정화 시장에서 불소 정화가 차지하는 규모는 대략 50~60% 정도였다”며 “정부 정책에 따라 불소 관련 정화 시설 투자를 확대한 기업들이 상당수인데 타격이 크다”고 주장했다. 토양오염물질은 불소를 포함한 23종과 환경부 장관이 필요에 따라 고시한 물질 등이다. 이들 물질이 우려기준을 초과할 경우 정화책임자는 오염토양을 정화해야 한다. 우려기준이 곧 정화기준인 셈이다.

토양오염을 정화할 때는 대부분 토양세척 공법을 적용한다. 토양세척 공법은 간단히 설명하면 토양을 빨래하듯이 빨아 오염물질을 없애는 방식이다. 기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처리나 분상화 작업을 통해 큰 입자를 작은 입자로 분쇄하는 과정 등을 거친 뒤 특정 오염물질에 최적화된 산용출제를 주입해 화학적으로 탈착 되는 반응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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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오염토 사전 관리 강화 필요해” = 불소 문제 외에도 토양 관리 분야에서 해묵은 과제는 또 있다. 13일 한국토양정화업협동조합은 “현장에서는 오염된 토양을 정화 처리하지 않고 건설폐기물로 둔갑해 불법 반출 매립되는 경우가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이 오염토가 농경지에 성토(흙을 쌓아 올림)나 복토(흙 덮기)용으로 매립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대응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땅에서 굴착해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토사에 대해서는 사전에 토양 오염 조사를 실시하도록 한다”며 “토양환경보전법의 허술한 점을 악용해 불법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올해 1월 농지법 시행규칙 등이 개정되면서 농경지에 외부 흙을 덮는 경우 토양 오염 우려 기준을 맞춰야 한다. 농경지에 오염토가 들어가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인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곳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토양정화업협동조합은 “궁극적으로는 사후에 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오염토 여부를 판별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분절적인 토양 오염 관리도 문제다. 환경부의 ‘토양오염 관리체계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토양오염 정화는 토양환경보전법의 규제대상이 되는 토양오염물질 및 토양오염관리 대상시설의 범위가 좁고 토양오염과 직접 연관된 지하수 오염을 통일적으로 규율하지 못하고 있어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토양 중 불소 관리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도 토양 위해성 평가를 개선할 때 토양은 물론 지하수 등 환경매체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4일 환경부 관계자는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토양 오염 우려 기준에 맞는 토양들만 성토나 복토되는 게 당연하다”며 “공사장에 오염된 토양의 양이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의무적으로 검사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현장 건의가 들어온 상황인데, 이 부분은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반입정화 시설 관리 강화 동시 추진 = 환경부는 불소 규제 완화를 하면서 오염토양 반출 정화 기준도 완화했다. 기본적으로 오염토양은 오염이 발생한 해당 부지에서 정화해야 한다.

이번 개정에 따라 도시지역이 아니어도 건설공사 과정에서 오염토양이 발견됐거나 부지 경사도 및 정화시설의 유형 등을 고려할 때 부지가 협소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오염토양을 반출해 정화할 수 있다.

‘토양오염관리체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는 “오염부지에 대한 활용성 및 반출정화에 대한 신속성 경제성 등으로 인해 오염토양 반출정화에 대한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덩달아 반입정화 규모는 2005년 5085㎥에서 2016년 57만5814㎥로 처리량이 100배 이상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반입정화 시설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2024년 8월 31일 현재 토양정화업체는 67개로 이중 26개가 반입정화 시설을 보유 중이다.

14일 환경부 관계자는 “반출정화에 대한 현장 여건을 고려한 유연화와 함께 반입정화 시설 관리 강화를 동시에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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