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1987년 이후 민주주의가 키운 군인들
12.3 비상계엄과 이어진 탄핵사태는 국민과 정치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군의 역할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부 군 수뇌부는 정치권력의 도구로 전락했지만 그와는 다른 길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 이는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군 조직 문화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계엄령 당시 특수전사령관이었던 곽종근 중장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대통령이 국회의사당 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그는 구속 피고인 신분임에도 단 한번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며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야당 회유설’에 대한 여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옥중 입장문을 통해 “이용당하거나 회유당한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반박하며 “비상계엄 상황과 관련된 사실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본질이며 내가 한 진술을 수정하거나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이었던 조성현 단장 역시 “국회 본청에 있는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국회를 통제하는 문제도 그렇고, 의원을 끌어내라는 명령도 그렇고, 이를 정상적인 지시로 받아들일 군인은 없었을 것”이라며 당시의 비정상적인 명령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 측이 그를 두고 ‘의인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하자 그는 “나는 의인이 아니다. 1경비단장으로서 부하들의 지휘관일 뿐이다.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부하들은 다 알고 있다. 나는 그때 했던 역할을 진술하는 것뿐”이라고 답해 법정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계엄 당시 윤 대통령이 “싹 다 정리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정치인 체포명령이 내려졌다고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 특히 그는 707특수임무단 중대장 출신으로 군의 작전체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 증언의 신뢰도를 더했다.
이들은 법 논리를 앞세워 진술을 거부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윤 대통령과 다수 고위직 인사들의 태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군의 존재 이유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다. 외부 위협에 대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것 또한 군의 중요한 책무다. 과거 민주주의를 키운 시민들의 힘이 이제는 군인들의 소신과 결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강 작가의 표현처럼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 셈이다.
미국 육군 특수부대 출신 데이비드 맥스웰은 12.3 비상계엄 당시 특수부대가 보여준 자제력에 대해 “민주적 가치에 따라 인도될 때 군사력은 독재적 경향에 대항하는 방벽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정재철 외교통일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