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유럽 “우리도 협상에 끼워줘”

2025-02-18 13:00:06 게재

유럽 주요국 정상들 파리에서 긴급 회동 … 미·러 종전 협상 속도전에 반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 대통령궁에서 우크라이나 상황과 유럽 안보를 논의하기 위한 유럽 정상들의 비공식 정상회의에 앞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환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긴급히 모였다. 미·러 협상이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럽과 우크라이나가 배제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상들은 유럽의 입장을 정리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열린 이번 회동에는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폴란드 정상과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약 3시간 반 동안 진행된 비공식 회의에서 정상들은 “우크라이나가 배제된 종전 협상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공식적인 공동 성명이나 구체적인 합의문은 나오지 않았지만, 각국 정상들은 우크라이나가 당사자로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 것이며, 강요된 평화는 거부한다”고 밝혔고,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 역시 “유럽과 우크라이나 없이 이루어지는 평화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번 회동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협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고위급 협상을 진행하며 조기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미국 측 협상단을 이끄는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는 “우크라이나에 평화협정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협상 테이블에 유럽이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통해 유럽의 입장을 전달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우리는 유럽 안보와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며 “미국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유럽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도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유럽 안보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종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와 EU가 당사자로 참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강하게 반발하며 “우리를 배제한 비밀 협상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오는 20일 켈로그 특사와의 회동을 앞둔 그는 “그와 함께 최전선을 방문해 러시아의 침략 현실을 직접 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자체적인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NATO 체제 내에서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독립적인 유럽 방위체제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투스크 총리는 “우리는 더 이상 미국의 보호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유럽이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방위 역량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우크라이나 지원을 전적으로 유럽이 부담해야 하며, 유럽 내 국방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후 평화유지군 파병 문제를 두고는 국가별로 입장 차이가 드러났다. 숄츠 독일 총리는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파병 논의는 시기상조”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스타머 영국 총리는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된다면 영국군을 포함한 유럽군을 현지에 배치할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 EU 회원국에서는 이날 파리 회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나왔다.

헝가리의 씨야르토 페테르 외무장관은 “파리에서 친전쟁, 반트럼프, 불만에 가득 찬 유럽 지도자들이 모여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을 방해하려 한다”며 “우리는 트럼프의 결정을 지지하며,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도 “EU가 유럽군 파병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유럽이 종전 협상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반발은 강하지만, 군사적 개입 여부와 미국과의 협력 방식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하는 만큼 향후 협상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 회동이 유럽이 안보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드러낸 동시에 전후 구상을 위한 유럽 연대의 한계를 노출시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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