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잇단 국가기관 흔들기, ‘자가당착’

2025-02-18 13:00:03 게재

공수처·경찰·검찰·법원·헌법재판소에 공세총력

법치가 핵심가치인 보수정당 존재이유 부인

대한민국 대표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국민의힘이 보수의 핵심가치인 법치를 흔드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규명하려는 국가기관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검찰·법원·헌법재판소)에게 잇달아 딴죽을 걸고 있는 것. 보수정당의 말과 행동이 서로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국민의힘 의원 37명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를 찾아 “이렇게 편향되고 불공정한 재판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의원은 “법률가적 양심이 아니라 정치적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면 헌재는 존폐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고 헌재 존폐론까지 거론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우리 국민들, 특히 많은 2030 청년 세대가 헌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 의원들은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도 추진 중이다. 여당이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한 헌재를 압박하는 동시에 보수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헌재 흔들기’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관측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12.3 계엄 직후 시작된 국가기관들의 윤 대통령 수사와 사법처리 과정을 끈질기게 공격해왔다. 수사에 착수한 공수처는 “수사권이 없다”며 집요하게 흔들었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한 판사에게는 “판사가 법 위에 섰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공수처와 경찰이 체포영장 집행에 나서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남동 관저까지 몰려가 이를 막아섰다. 일부 경찰 출신 국민의힘 의원은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경찰을 찾아가 윽박질렀다. 공수처가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가까스로 집행하자, “사법 쿠데타” “민주당의 사병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법원이 지난달 19일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에만 눈이 멀어 있는 거대 야당, 벌써부터 다음 정권에 줄을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수사기관들, 그리고 권력의 눈치만 보는 비겁한 사법부,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장본인들”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12.3 계엄→공수처·경찰·검찰의 내란혐의 수사→윤 대통령 체포→윤 대통령 구속→헌재의 탄핵 심판이라는 일련의 수사·사법처리 과정을 석 달 째 공격하고 있다. 법률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들이 법률에 근거한 법 집행을 하고 있는데 법치를 핵심가치로 하는 보수정당이 이를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탄핵에 반대하는 강성보수층 표심만 바라 보고 보수정당의 핵심가치마저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보수정당의 일탈은 궁극적으로는 보수정당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면서 재집권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권 인사는 17일 “보수정당은 법치를 중시하고 국가시스템을 존중하는 모습을 통해 보수층 뿐 아니라 중도층에게도 ‘안정감 있다’ ‘신뢰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건데 이번 계엄 사태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연일 국가기관들을 공격하고 흔드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스스로 보수정당의 가치를 무너뜨린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한국갤럽 조사(11~13일, 전화면접,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p,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차기대선에 대한 의견을 묻자, 중도층에서는 ‘정권 유지’ 33%, ‘정권 교체’ 54%였다. 국민의힘의 ‘국가기관과의 전쟁’이 중도층 표심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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