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족이 웬 말? 친윤 ‘반탄 바람’ 타고 너도나도 대선행
김문수·홍준표 이어 나경원 윤상현 김기현 원희룡 이철우 거론
탄핵 인용되면 책임론 예상 … 보수층·TK 업고 ‘위기를 기회로’
후보 돼도 본선 경쟁력 의문 … “친윤·반탄으로는 확장성 한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은 2007년 12월 대선에서 참패한 직후 “친노라고 표현돼 온 우리는 폐족이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라고 밝혔다. 폐족은 조상이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을 뜻한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탄핵이 인용될 경우 친윤(윤석열)은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윤석열정권 개국공신으로 혜택을 누렸던 친윤이 ‘탄핵 대통령’을 초래한 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친박(박근혜)이 사실상 폐족으로 전락하면서 비박에게 대선후보까지 뺏긴 전례도 있다.
하지만 친윤은 폐족은커녕 부활의 몸부림을 치는 모습이다. 친윤 인사들이 앞다퉈 조기 대선에 출마할 태세다. 2017년과 달리 보수층에서 ‘반탄(탄핵 반대) 바람’이 거세게 불자, 이를 활용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잘만하면 대권의 주인공이 되고, 실패해도 정치적 몸집을 키우는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한국갤럽(11~13일, 전화면접,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p,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의 차기주자 조사에서는 이재명 34%, 김문수 12%, 한동훈·홍준표·오세훈 5%, 이준석·조 국·김동연 1%로 나타났다. 주관식 질문에서 1% 이상 응답이 나온 보수주자는 김문수· 홍준표·오세훈·이준석에 그친다. 그 중 친윤은 김문수 노동부 장관과 홍준표 대구시장 정도다.
김 장관은 19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진실한 사람, 청렴한 사람만 공직을 맡을 수 있다”고 공격했다.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대목으로 읽힌다.
김 장관은 탄핵 심판이 남은 만큼 대선 언급에 조심스럽지만, 여권에서는 김 장관이 대선 출마로 마음을 굳혔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홍 시장은 이날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서 “헌법재판소가 불공정하게 (심판을) 진행하고 있어서 참 걱정스럽다”며 탄핵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나경원·김기현·윤상현 의원과 원희룡 전 장관,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아직 여론조사에는 지지세가 잡히지 않지만 본인들은 탄핵 저지에 적극 나서면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모습이다.
나·김·윤 의원은 윤 대통령 체포를 저지하기 위해 한남동 관저로 달려가는가하면 지난 17일에는 헌법재판소를 항의방문해 “부실한 심리를 거듭 반복하면서 ‘답정너’ 속도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 전 장관도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를 비판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 8일 동대구역에 열린 탄핵 반대 집회 무대에 올라 애국가를 불러 눈길을 끌었던 이철우 지사는 19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우파 정치인들은 절차적 하자, 폭력적 행태마저 보이는 탄핵 심판으로부터 윤 대통령을 지키는 것에 총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선거 관련해선 절대 생각해본 적 없다”며 출마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여권에선 이 지사가 친윤·반탄 후보로 대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친윤 주자들이 앞다퉈 대선행을 고민하는 건 국민의힘 핵심 지지기반인 보수층과 대구·경북(TK) 표심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보수층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성(25%)보다 반대(72%)가 훨씬 많다. TK에서도 찬성(32%)보다 반대(67%)가 우위다. 보수층·TK 표심을 업으면 대선에서 해볼 만하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만약 본선에서 패하더라도 보수층·TK에 확실한 존재감을 남긴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다만 친윤 주자 가운데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출된다면 본선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친윤·반탄 이미지로 합리적 보수와 중도층 지지까지 얻을 수 있겠냐는 회의론이 나오는 것. 여권 인사는 19일 “만약 광화문이나 동대구역에 모인 사람들 숫자만 믿고 대선 승리를 기대한다면 오판이 될 수 있다”며 “침묵하는 중도층이 친윤·반탄 후보를 찍을지 의문이다. 탄핵이 기각되면 모르지만, (탄핵이) 인용돼서 치러지는 대선에는 친윤·반탄 이미지가 치명적 약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