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 3년 만에 보수정권 복귀
기민·기사당 1위, 극우 AfD 제2당 전망 … 메르츠 대표 “책임 막중” 승리 선언

23일(현지시간)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 총선거에 대해 양대 공영방송 ARD와 ZDF가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CDU·CSU 연합은 29.0%(ARD) 또는 28.5%(ZDF)를 기록하며 AfD와 SPD를 크게 앞서 나갔다. 녹색당은 약 13.5%, 좌파당은 8.5% 내외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FDP)과 자라바겐크네히트연합(BSW)은 선거법상 의석 획득 기준인 5% 득표 또는 지역구 승리 조건을 충족할지 여부에 따라 향후 의석 배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ARD 측 계산에 따르면 전체 630석 중 CDU·CSU 연합은 약 210석, AfD는 145석, SPD는 118석, 녹색당은 94석, 좌파당은 62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해 11월 ‘신호등’ 연정 붕괴 이후 치러진 총선 기간 내내 CDU·CSU 연합이 3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해 온 상황과 맞물려 있다. CDU·CSU 연합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는 출구조사 발표 직후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며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신속한 협상 의지를 내비쳤다. 메르츠 대표는 “앞으로 맡게 될 책임이 막중하다”면서 가능하다면 SPD나 녹색당 등과의 연정을 모색하겠지만 극우 AfD와는 결코 손을 잡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연임에 도전했던 올라프 숄츠 총리는 패배를 인정하며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언급한 가운데 향후 CDU·CSU 연합과의 협상 참여는 배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SPD 내부에서는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이 대표로 연정 협상에 나설 계획이라는 보도가 있어 향후 정부 구성 방식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치안과 사회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꼽은 유권자들이 18%씩을 차지한 가운데, 이민 문제 역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됐다. 전체 유권자의 55%가 “외국인 유입이 과도하다”는 우려를 표시했으며, 특히 AfD 지지자 중 거의 90%에 이르는 비율이 반이민 정서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보수 성향 정당들이 난민 및 이민정책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득표율 상승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최근 연이어 발생한 난민 관련 범죄 사건들이 유권자들의 불안을 가중시키면서 보수·극우 진영의 표심을 견인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례로 지난달 아샤펜부르크 공원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에서의 사건 등은 국민들의 치안 및 이민정책에 대한 민감도를 높였다. 메르츠 대표는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이민정책을 바꿀 준비가 안 된 정당과는 연정을 꾸리지 않겠다”고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국제 사회에서도 이번 총선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SNS를 통해 “독일 보수 정당이 승리한 오늘은 독일과 미국에 굉장한 날”이라며 에너지와 이민 문제 등 오랜 의제에 지친 국민들의 심리를 평가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독일 내 정치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향후 보수정당이 국제 무대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펼칠 가능성을 시사했다.
총선 결과에 따른 의석 배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CDU·CSU 연합이 의석 확정 후 신속히 연립 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메르츠 대표는 부활절(4월 20일)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를 밝히며 “가능한 한 빨리 독일에서 실행 가능한 정부를 재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DU·CSU 연합 주도로 연정이 구성되면 CDU 소속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2021년 12월 퇴진한 이후 3년여 만에 다시 보수 성향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이번 선거 결과로 좌우 대연정 구도가 형성될 경우 과거 서독 시절 네 차례의 사례처럼 2당 혹은 3당 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며, 연정 협상 과정에서의 변수에 따라 정부 구성 방식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어떤 형태로든 독일 정치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며, 보수 정권 복귀와 함께 이민·안보, 경제 회복 등 주요 정책 쟁점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촉발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