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되풀이 예고…벌써 ‘네거티브·표퓰리즘 대선’ 조짐
조기 대선, 검증 시간 부족 이용 … 여야 “폭로·공약 쏟아내자”
여 “인생이 범죄” 야 “내란옹호” … 경쟁적으로 감세정책 내놔
2017년 19대 대선은 ‘박근혜 탄핵’에 따른 첫 조기 대선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2017년 3월 9일)가 내려지고 60일 뒤인 5월 9일 조기 대선이 실시됐다. 반 년 넘게 걸리던 역대 대선과 달리 60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승패가 결정된 것이다.

준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여야는 설익은 공약을 쏟아내기에 급급했다. 표만 좇는 포퓰리즘이라는 ‘표퓰리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야 가리지 않고 퍼주기 경쟁에 돌입했다. 후보들이 5년 임기 동안 매년 자신의 정책 공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고 추산한 액수가 각자 수십조에 달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 35조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18조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40조원,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41조원 등이었다. 공약에 수십조를 쓰겠다고 했지만 재원 조달 구상은 엉성하기 그지 없었다. 공약을 검증할 시간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후보들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쏟아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후보들은 서로를 겨냥한 네거티브에도 열을 올렸다. 이 역시 제대로 해명할 여유가 없다는 걸 이용한 ‘묻지 마 폭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민주당 문 후보 아들의 특혜 채용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고소·고발이 난무했다. 자유한국당 홍 후보는 자신의 자서전에 썼던 ‘돼지발정제’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국민의당 안 후보는 ‘갑철수’ 논란으로 힘들었다. 여권 인사는 23일 “2017년 대선은 초단기간에 치러지는 특수한 선거였기 때문에 선거 전략이라고 해봤자 네거티브와 표퓰리즘 공약밖에 없었다. 서로 해명하고 검증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편 약점을 무차별 폭로하고, 겉보기만 그럴듯한 공약을 쏟아내는 게 유일한 전략이었다”고 전했다.
윤석열 탄핵 심판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5월 초중순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조기 대선도 2017년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이미 네거티브·표퓰리즘 대선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여야는 윤 대통령의 최종 변론(25일)을 앞두고도 서로를 향한 독설을 쏟아낸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23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상속세 개편 토론 제안에 “인생 자체가 사기이고 범죄인 이 대표의 무례한 공개 질의에는 직접 답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사실상 ‘범죄자’ 취급하면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이날 “국민의힘은 내란 옹호·이재명 때리기·무조건 반대에만 몰두하며 ‘극우 전광훈 2중대’가 돼 버렸다”며 “이러니 백날 이재명을 욕해도 이재명에게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내란동조당’으로 몰고 있다. 민주당은 여당 대선주자들을 겨냥해 ‘명태균 게이트’에도 연일 불을 붙이고 있다.
여야는 경쟁적으로 감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공약 전초전’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상속세 최고세율 50%→40% 인하 △자녀공제 5000만원→5억원 확대 △가업상속공제 확대 △상속세 최대주주 할증 20%→폐지 등을 내걸었다. 근로소득세 개편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도 뒤지지 않는다. △상속세 일괄공제 5억원→8억원 확대 △상속세 배우자 공제 5억원→10억원 확대 등을 제시했다. 소득세 물가연동제와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도 검토 중이다.
앞서 여권 인사는 “여야 모두 조기 대선용 표퓰리즘 공약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차기 정권은 초유의 경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표퓰리즘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점을 유권자들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