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겨냥 검찰 수사 ‘속빈강정’

2025-02-24 13:00:35 게재

‘반인륜 범죄’라던 ‘강제북송’ 선고유예

‘블랙리스트’의혹 조명균 전 장관 무죄

“객관의무 준수됐나” 되레 검찰 도마에

문재인정부 인사들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도마에 오른 모습이다. 최근 법원에서 나온 성적이 신통치 않은데다 검찰 수사의 의도나 절차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법원에서는 검찰이 기소한 문재인정부 인사들에 대한 선고유예나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허경무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문재인정부 안보라인 인사들에게 모두 징역형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각각 징역 10개월의 선고유예를,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각각 징역 6개월의 선고유예를 받았다.

선고유예는 범죄 정황이 경미한 경우 유죄는 인정하면서도 일정 기간 선고 자체를 미뤄 2년이 지나면 처벌 자체를 면하게 하는 판결이다.

정 전 실장 등은 동료선원 16명을 살해한 것으로 지목된 탈북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북한으로 돌려보내도록 직권을 남용한 혐의 등으로 2023년 2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은 2019년 발생했지만 3년이 지난 2022년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직후 국정원의 자체조사와 고발이 이어지면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당시 대통령실까지 나서 ‘반인륜적 범죄행위’라며 전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이 신중한 법적 검토 없이 북송을 결정한 것은 유죄라고 보면서도 처벌까지 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선고유예 판결을 내리며 검찰 수사·기소에 대해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재판부는 “분단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돼오면서 법적 논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모순과 공백이 산재해 이를 피해가며 적법 행정을 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제도 개선을 마련하는 등 법질서가 처한 모순과 공백을 메우는 대신 수년간 수많은 수사·공소유지 인력을 투입해 징역형의 실형 등을 부과해 불이익을 주는 게 더 나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대통령이 바뀌고 검찰과 국정원의 지휘부가 교체되면서 국정원 스스로 고발인이 돼 고발한 사건”이라며 “검사의 객관의무가 준수된 수사와 기소였는지도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의 과도한 수사와 정치적 기소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읽힌다.

이에 앞서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설범식 부장판사)는 지난 4일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으로 기소된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과 송철호 전 울산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른바 ‘하명수사’ 의혹으로 황 의원과 송 전 시장에게 각각 징역 3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은 것이다.

하명수사 의혹은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개입해 당시 울산경찰청장이던 황 의원에게 김기현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의원)을 수사하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2심 재판부는 하명수사에 관여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받은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에도 무죄를 선고했다. 또 당내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경선 포기 대가로 공직을 제안한 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9년 본격화된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당시 문재인정부 후반기 국정운영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검찰은 울산시장 선거에 대한 청와대의 조직적 개입의 실체를 규명해내지 못한 꼴이 됐다.

이른바 ‘문재인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도 최근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 전 장관은 손광주 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9부(김중남 부장판사)는 지난달 24일 조 전 장관이 사표제출을 지시한 게 분명치 않고 사표 제출 지시가 사실이라 해도 단순히 지위를 남용한 것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1심 선고를 놓고도 검찰 수사에 대한 뒷말이 나온다. 송 전 대표는 지난달 8일 1심 재판에서 ‘평화와 먹고사는 문제연구소’를 통해 후원금 명목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정작 송 전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의 직접적 계기가 됐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다. 수사 단서가 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임의제출한 휴대전화가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임의제출이라는 명목 하에 영장주의를 벗어나 법리에 적용받지 않는 증거수집을 시도하고 있다”며 검찰 수사 행태를 꼬집은 바 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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