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법의 정신과 일그러진 한국 정치의 초상

2025-02-25 13:00:09 게재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탄핵의 시간이 마무리돼 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위반 여부를 가리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헌법재판관들의 소관이다. 하지만 장삼이사 누구나 단언할 수는 있다. 대통령의 파면은 피할 수 없다. 비상계엄이라는 사안이 너무 뚜렷해 논란의 소지가 없다. 하지만 12월 3일 이후 적어도 50대 이후 세대는 긴 악몽의 연속이다. 일그러진 한국 현대사의 상처뿐인 초상을 다시 소환했다.

하나는 흑백사진으로 돌려보는 5.16 군사반란이다. 다른 하나는 1980년 전두환 군부의 5.18 비상계엄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이다. 앞의 둘은 성공했고 세번째는 아직 진행형이지만 사실은 실패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전국 비상계엄 선포에서 진행까지 전 과정이 국민 앞에 생중계됐다. 탄핵심판의 내용도 모두 속속들이 알고 있다. 법률적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유·무죄를 판단 할 수 있는 공감이 형성됐다.

마지막으로 한국사 최악의 일그러진 초상은 2025년 1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침탈한 폭동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군중들에 의해서다. 탄핵을 심판하는 헌재를 둘러싸고 연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핵심 주장은 “계엄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권 행사”라고 한다. 그러면서 탄핵반대 시위는 정당한 ‘국민저항권’ 행사로 포장한다. 우리 헌법에 저항권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다만 ‘국민주권주의’ 헌법정신에 따라 국민 기본권이 침해되었을 때 그것을 지키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으로 간주한다.

인간 존엄 희생하는 대통령 특권은 없어

대통령의 통치권으로써 계엄은 정당한가? 그 법리는 “계엄은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로써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뿌리를 보면 배경을 알 수 있다. 17년간 한국을 통치한 대통령이 박정희다. 그의 장기집권은 ‘10월 유신’이라 불리는 친위쿠데타로 가능했다. 비상계엄을 발동해 국회를 해산하고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정수의 1/3을 임명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의 국회 장악이다. 이때 계엄과 관련한 일체의 위헌·위법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동원한 이론이 ‘대통령의 통치행위론’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통치행위론’은 가능한가? 법의 근원은 인간의 자연상태, 자유 그 자체를 보장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어떤 외부의 간섭이나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를 보장하는 것이다. 평화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자연법의 아버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다. 그는 모든 법 이전에 자연법이 있다고 했다. 국가공동체가 형성되면서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의 선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어떠한 통치행위도 공공선을 명분으로 인간의 창조적 기본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통치권은 불가능하다.

세상만사의 이해관계를 판단하는 것이 ‘실정법’이다. 실정법의 기본정신은 만인에게 공정한 ‘평등의 원칙’이다. 법의 저울은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법을 위반한 사건·사고에 대한 죄와 벌, 책임의 과다를 분별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법은 사건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논리적 형식을 넘어서야 한다. 재판관은 법리를 따지고 적용하는 데 있어 사회적 정의와 양심에 입각해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양심은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신의 양심에 따르는 것이다. 자연법의 핵심이다. 인간의 존엄을 희생하는 특권으로서 ‘대통령의 통치권’은 없다. 인정되지 않는다.

전국에서 헌재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군중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관에 대한 압박을 넘어 협박도 거침없다.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의 정치 이념과 공화주의 국가 체제를 기본 정신으로 한다.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 입법 사법 행정의 3권분립 체제를 도입했다. 최종 심판의 주체가 되는 헌재와 법원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도록 보호해야 한다. 무력이나 다중의 힘을 동원한 강제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직 법과 제도, 민주적 절차로만 가능하다. 계엄은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도전이자 위반이다.

계엄 후유증 극복하면 모범국가로 재탄생

12.3 계엄, 일그러진 한국 정치의 마지막 초상이었으면 좋겠다. 정치를 살려야 한다. 법으로 승패를 가리는 적대와 배제의 정치가 검찰·사법의 정치화를 불렀다. 이 상태를 끝내지 못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면 국가 공동체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 심리적인 내전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반대로 대화와 타협 상생의 정치를 살려낸다면 대전환의 기회가 될 것이다.

12.3부터 현재까지 진행형인 계엄은 한국 근현대사의 부조리와 부패, 특권이 농축된 사건이다. 이 오래된 한국병을 잘 치유하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세계 최강의 경제강국으로 우뚝 세울 수 있다. 지금이 그 마지막 기회 앞에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칼럼니스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