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절대책도 대형사고도 ‘반복’

2025-02-27 13:00:28 게재

정부 근절대책에도 고속도로 붕괴 … 경찰 사고원인 규명 수사 본격화

국회, 업계 반발에 중단됐던 ‘사망 사고 건설사 명단 공개’ 법안 발의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교량 상판 구조물 붕괴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이 현장 관계자들을 불러 사고원인 규명에 착수했다. 정부는 사고가 발생하면 매번 근절대책을 발표하지만 건설현장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자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급기야 국회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건설사를 공개하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됐다.

27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고속도로 붕괴 사고 수사전담팀은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과 하도급사인 장헌산업·강산개발 등의 공사 관련자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 중이다.

사고 구간은 현대엔지니어링(50%), 호반산업(30%), 범양건영(20%) 컨소시엄이 공사를 진행 중이며, 현대엔지니어링이 주관사다.

하도급사인 장헌산업은 교량 상판 구조물인 ‘거더’(다리 상판 밑에 까는 보의 일종)를 설치하는 작업을, 강산개발은 거더 위에 슬라브(상판)를 얹는 작업을 각각 맡았다.

경찰은 이들 회사 관계자로부터 △공사에 사용한 ‘DR거더 런칭 가설’ 공법(거더 등을 사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 절차에 맞게 이뤄졌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작업자 교육이 적절했는지, 그리고 사고 당시 현장 상황이 어땠는지 등을 다각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사람은 없다.

◆현장 CCTV 확보, 분석 중 = 이번 사고로 교량 상판 구조물 등에 올라 작업하던 10명 중 중국인 2명을 포함해 4명이 사망했다. 또 6명은 중환자실 등에서 치료받고 있어 당시 상황을 진술 받는데는 상당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들의 소속 회사는 장헌산업 8명, 강산개발 2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거더가 한쪽으로 밀리면서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담긴 현장의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또 사망자 4명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파악 중이다.

아울러 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국토교통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5개 관계기관과 함께 28일 오전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무너진 교량 상판 지난 25일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교각 위에 설치 중이던 교량 상판 구조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상부에서 추락한 근로자 10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사진은 26일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고용노동부, 중대재해법 관련 조사 = 고용노동부도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용부는 사고 발생 직후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을 현장에 급파하고 관할 고용노동지청에서 현장 출동해 해당 작업 및 동일한 작업에 대해 작업 중지를 명령했다.

고용부는 동일한 사업장에서 3명 이상이 사망(5인 이상 사상)함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본부에 중앙산업재해수습본부를, 관할지청인 평택지청에 지역산업재해수습본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고용부는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도로·철도·굴착공사 현장 22곳에 대해 산업안전 감독을 실시한다.

이 외에 전국의 다리 간 거리 50m 이상인 고위험 교량 공사 현장 349곳도 긴급 안전 점검을 벌이기로 했다.

◆정부 대책 실효성 의문 = 이런 가운데 건설현장의 대형 붕괴사고가 반복되고 있어 근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하면 내놓은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23년 4월에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지하주차장 지붕층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후 수사·감사 과정에서 철근 누락, 감독 부실, 전관 업체 유착 등이 드러났다. 주거용 건물에서 발생한 일이라 자칫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한 사고였다. 이에 국토부와 LH는 강도 높은 재발방지 대책과 혁신안을 내놨다.

지난 2022년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건설현장에서는 39층 타설 작업 중 23~38층이 무너져 하청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토부는 표준시방서 활용 민간 확대, 레미콘 공장 시스템 인증제 도입 등 3개 분야 19개 항목에 대한 부실시공 근절방안을 수립했다.

더 앞서 2021년 6월 9일에는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 철거 현장에서 5층 규모 건물이 무너져 승강장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승객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2019년 7월 27일에는 광주 서구 치평동 한 건물 2층의 클럽 복층 구조물이 붕괴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34명이 부상당했다.

◆건설기술 진흥법 개정안에 눈길 = 정부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매번 근절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후 근절대책을 발표한지 22개월 만에 이번엔 고속도로 건설현장이 무너진 것이다.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자 정부가 사망 사고를 낸 건설사 명단을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용갑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사망 사고가 발생한 건설사들의 명단을 국토교통부가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건설기술 진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 했다.

국토부는 건설 현장의 인명 피해를 줄이려는 취지로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100대 건설사 명단을 공개했다.

하지만 건설업계들로부터 ‘법적 근거가 없다’는 항의가 잇따르자 지난해부터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은 사망자가 발생한 건설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 등 건설 사업자 명단과 공사명, 사망자 수 등을 분기별로 인터넷 등에 공개하도록 했다. 명단 공개 자체는 국토부령으로 정하되, 구체적인 공개 범위와 절차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명시했다.

◆지난해 상위 20개 건설사 현장서 35명 사망 = 앞서 국토부가 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시공 능력 평가 상위 20위 건설사들의 건설 현장 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총 1868명으로 조사됐다. 이 중 사망자는 35명으로 전년(25명)보다 25.0% 증가했다.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대우건설로 모두 7명이 숨졌다. GS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각 5명), 현대건설(3명)이 뒤를 이었다.

박 의원은 “대형 건설사들의 경각심을 제고하고 책임을 강화해 건설현장에서 안전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건설사들을 분기별로 공개하려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장세풍·한남진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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