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재수생 16만명 시대, 우리 교육 어디로

2025-03-04 13:00:06 게재

새학기가 시작된 오늘 대학가는 새내기들의 설렘보다 ‘반수’와 ‘재수’ 준비로 분주하다. 16만명이 넘는 재수생은 단순한 통계가 아닌 우리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2025학년도 졸업생 수험생인 N수생은 16만897명으로 2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생 중 재수 이상은 57.4%로 재학생(40.3%)보다 높다. 의대는 더 심각해서 정시 합격자의 79.3%가 N수생이다. 2026학년도에는 N수생이 2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재수생 증가는 단순한 경제적 비용 문제를 넘어선다. 물론 1인당 연간 사교육비 6000만원에 16만여명을 곱하면 약 1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가 나온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청년들의 성장과 발달이 획일화된 시험에 종속되는 현실이다.

수능 재도전의 굴레, 우리 청년들의 성장과 발달 획일화된 시험에 종속

20대 초반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창의성을 키워야 할 시기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이 단 하나의 시험점수에 자신의 가치를 종속시키며 소중한 성장의 시간을 포기하고 있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가정만 자녀의 재수를 지원할 수 있어 교육 불평등도 심화된다. 재수 비용은 ‘매몰비용(sunk cost)’ 특성을 가져 한번 투자한 후에는 이미 들인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 계속 투자하게 만든다. 이런 악순환은 삼수, 사수로 이어지며 청년의 가능성을 점점 더 좁은 통로로 밀어 넣는다. 재수생들의 시간과 노력이 수능이라는 단일 시험에만 집중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미래 역량 개발에도 부정적이다. 10조원이 창의적 분야나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다양한 역량 개발에 투자된다면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재수생 증가 현상의 근본원인은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과 실행력 부재에 있다. 문재인정부의 ‘정시 비중 40% 의무화 정책’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불공정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와 달리 수능점수 중심의 입시 체계를 강화했다. 입시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촉발한 조국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취지였지만 학교 교육은 전인적 성장의 장이 아닌 수능 대비 ‘문제풀이’ 과정으로 변질됐고, 결과적으로 N수생만 양산한 제도가 됐다.

지난해 4.10총선을 앞두고 전격 시행된 윤석열정부 의대 증원 정책 역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치밀한 준비 없이 추진돼 재수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의대 정원 확대는 ‘마지막 기회’라는 심리를 자극해 더 많은 학생들이 재수를 선택하게 했다.

진보든 보수든 두 정부의 정책 실패의 공통점은 개혁이라는 명분만 앞세웠을 뿐 실제 그것을 제대로 실행할 능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두 정부 모두 청년들의 전인적 발달과 다양한 진로 모색이라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보다 당장의 정치적 성과에 치중했고 그 결과 우리 청년들은 자신의 적성과 가능성을 탐색할 기회를 잃고 획일화된 경쟁의 틀 안에 갇히게 됐다.

진정한 교육개혁은 청년들의 성장과 발달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단순히 성적이나 대학 서열이 아닌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이 존중받는 다양한 교육 경로가 필요하다. 입시제도는 단일 시험이 아닌 학생의 다양한 역량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수능 위주의 교육은 전통적으로 암기와 정해진 문제풀이에 집중된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단순 암기보다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내고 이를 응용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복잡한 문제 상황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융합적 사고와 창의력이 필수적이다.

단 하루 시험성적에 좌절되지 않는 교육 생태계 만들기가 진정한 교육 개혁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존의 수능 위주의 암기교육이 아니라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교육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16만 N수생의 현실은 우리 교육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N수생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현 교육제도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다음 정부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진정한 교육개혁은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실행 능력에서 시작된다.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가 정권마다 바뀌는 교육정책의 희생양이 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교육개혁은 성장과 발전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철저한 준비와 일관된 비전, 흔들림 없는 실행력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 청년들의 다양한 꿈이 단 하루의 시험성적에 좌절되지 않는 교육 생태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육개혁이다.

김기수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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