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각자도생의 세계적 대전환기, 대한민국 국군의 책무
12·3 비상계엄 이후 정치권과 국론이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세계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국발 초강력 태풍으로 충격에 빠져있다. 그럼에도 선장이 없는 한국호는 3개월째 부두에 발이 묶인 채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미국의 새로운 경제와 안보정책으로 국제사회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관세정책과 동맹국 및 우방국에 국방비 대폭 증액 요구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트럼프 신행정부의 외교 행태를 분석해보면, 기존의 ‘자유주의 패권’ 대신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으로 노선을 변경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역외균형 전략은 세계적 세력균형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할 도전국의 부상을 힘으로 억압하지만,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직접 위협을 받을 때만 군사력을 사용하는 전략이다. 따라서 향후 트럼프 행정부는 해외에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해 국방자원의 투입을 줄이는 대신 미국경제 활성화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매년 8%씩 자국의 국방비를 삭감하는 대신 동맹국과 우방국에 국방비 증액을 요구한 것은 변화된 외교정책의 맥락으로 읽힌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국제질서의 현상유지를 추구하되 세계적 차원의 문제마다 직접 개입하거나 통제 방식이 아닌 각자 해결방식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동맹국에 대해서도 원론적 수준의 안전보장 약속은 하겠지만 각국의 문제를 각자 해결하도록 역할을 재조정하고, 오히려 미국의 이익을 위해 동맹국의 기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한다.
트럼프의 한미동맹 청구서 찻잔 속 태풍
지난 한 달 동안 한미 외교·안보 수장의 회동이나 B-1B 전개 등에서 보여준 미국의 모습은 기존의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마련되면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찻잔 속 태풍으로 여겨진다. 이달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방한은 그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한미동맹의 안보현안은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한미연합연습 및 훈련, 확장억제 및 전략자산 전개, 전작권 전환, 북핵문제 등 산적해 있다. 냉소적 동맹관과 철저한 거래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은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국정이 마비되면서 정부 차원의 기민한 대미외교에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한국군이 12·3 친위쿠데타에 가담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배경은 전시 작전통제권을 미군 지휘관에게 맡겨놓고 기형적 행정군대로 변질된 데 있다. 자국의 안보를 책임져야 할 고위장교들이 밤을 새워 전략·전술을 연구해도 부족한데 정치권력을 쫓아 계엄군이 된 현실은 분단 80년, 동북아 최대 화약고인 나라에서 모순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2·3 비상계엄은 계엄을 선포할 상황도, 요건도 갖추지 못한 비상식적 국가폭력의 하나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군 고위지휘관들은 국군통수권자의 명령이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한다. 이는 국민이 입혀준 군복과 계급장을 달 자격이 없는 망언이자 국민 배신행위이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에서 한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돼 167개국 중 32위로 발표됐다. 이는 전년도보다 10계단 추락한 결과로, 12·3 비상계엄이 가져온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적표다. 세계적 격변기에 반민주적 비상계엄이 국격의 추락은 물론 경제와 안보를 위협하는 현실에서 뒷맛이 씁쓸하다.
국민의 군대 오직 헌법적 사명 완수 전념해야
내우외환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가치와 이념을 중시하던 선한 미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미국의 번영과 영광을 되찾는 데 필요하다면 적성 국가인 러시아나 북한과도 검은 거래를 마다하지 않는 트럼프식 외교를 목도하고 있다.
제복 입은 민주군대는 특정 개인이 아닌 헌법 수호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 군은 최근 우크라이나 종전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유럽형 안보 딜레마와 같은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을 직시하고 미국의 선의나 동맹의 의존에서 벗어나 '위국헌신군인본분'의 사명을 다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