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칼럼
최고 만들고 싶으면 조기영재교육은 잊으라
이제는 곧 인공지능이 많은 부문에서 사람의 능력보다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역할 상실에 빠질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긍정적 사고 회로를 작동시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전의 시절과는 달리 사람들이 좀 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유로운 삶을 살아도 되는 시대가 되지는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는 초고도의 인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럼 어떤 교육이 이런 최고 수준의 인재를 만들어 낼까?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빅터 앰브로스 교수가 2025년 2월 한국을 방문해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강연을 시작하면서 본인의 어린 시절의 성적표를 공개했다. 그 성적표에 의하면 대부분의 과학 수학 과목에서 A학점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부끄러운’ 성적표를 굳이 공개한 이유는 어렸을 때의 나쁜 성적이 노벨상을 받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오히려 거꾸로일 수도 있다면 믿겠는가? 실제로 그러한 연구 결과가 얼마 전 사이언스에 논문으로 발표됐다.
이 논문에서는 올림픽 우승자를 포함해 노벨상 수상자, 세계 최고의 작곡가, 체스 우승자 등 월드클래스에 이른 다양한 분야의 초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것일까 라는 질문을 다루고 있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어렸을 때 어떤 교육을 받으면 월클이 될 수 있을까를 예상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상식은 영재를 발굴해 집중적으로 그 분야의 교육을 강하게 시키면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영재교육을 위한 공적 사적기관이 넘쳐 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논문은 충격에 가까운 다른 결론을 데이터를 통해 잔잔히 보여준다.
사이언스에서 확인된 영재교육의 문제점
각 분야의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을 조사해 본 결과 놀랍게도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경우는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전혀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빅터 앰브로스 교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벨상 수상자의 많은 경우 어렸을 때 오히려 또래의 영재들에 비해 훨씬 낮은 성취도를 보였고 대기만성형으로 성장해 인생 후반기에 들어 비로소 활짝 피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나라에 대입해 보면 조기교육 등을 통해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인재들이 나중에 실제로 세계 수준이 되는 경우보다는 다른 배경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자란 인재들이 그렇게 될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혹시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어 보셨는가?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을 써서 기초를 다지고 익숙해질 때까지 단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고교시절 입시준비를 위해 엄청난 시간을 수학문제 푸는 데 썼다. 그 흔적으로 남은 손가락 굳은살은 최근 노화에 따른 손가락 변형이 오기 전까지 수십년간 지워지지 않았다.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 노동운동의 현장에 뛰어든 수많은 학출(학생 출신) 위장취업자를 색출하기 위해 손가락 굳은살을 살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식의 지식의 단련이 여전히 필요할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인공지능을 이길 수는 더더욱 없다. 이런 식의 학습은 인공지능이 훨씬 더 잘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어쩌면 1만시간의 법칙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때에만 효과를 나타내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학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1만시간 법칙과 같이 깊이 파는 전공 교육도 중요하지만 강의실 밖에서의 넓게 파는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감히 주장해 본다. 공감할 수 있는 대화법, 설득력 있는 글쓰기와 이를 위한 다양한 독서, 인간관계 살피고 쌓아가기, 배려와 상식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진심에서 우러나는 공감의 확대, 그리고 더불어 함께 잘 사는 길에 대한 고민을 하는 태도 등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깊게 파는 이상으로 넓게 파는 교육을
한가지만 깊게 파는 교육보다 넓게 파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새로운 창의력을 만들어 가는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가 만들어질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성공의 길임을 이미 사이언스 논문에서 보여 주고 있으니 믿어도 된다.
이런 교육은 최고 수준의 인재를 키우는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넓게 배우고 익히는 과정 가운데에서 비록 모든 학생들이 최고 수준의 전문가가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들이 더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꼬고 또 꼬아서 만드는 수능문제를 더 잘 풀기 위한 훈련을 반복하는 것보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한 줄 더 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제 조기 영재교육과 대학교육, 다시 생각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의 시대이므로.
자연과학대 생명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