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 연준의 정책분열이 의미하는 것

2026-05-12 13:00:15 게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중앙은행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더 이상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연준의 정책분열이다.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는 4명의 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1992년 이후 34년 만의 최대 정책이견이다. 연준 내부조차 현재 경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 임기는 5월 15일 종료된다. 차기 의장인 케빈 워시는 연준의 8조달러 규모 대차대조표를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 개편과 물가 측정 방식의 재검토 필요성도 강조했다. 시장 입장에서는 난기류 속에서 조종사가 교체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미 긴축을 시작한 시장

그런데도 뉴욕증시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과 기술주 강세에 힘입어 주요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하지만 채권시장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보낸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현재 4.39% 수준이다. 1년 전 4.32%와 큰 차이가 없다. 연준이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해왔는데도 장기금리가 내려가지 않는 것은 시장이 구조적 인플레이션과 재정리스크를 더 크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킬 때 더 정확했던 쪽은 대체로 채권시장이다. 채권시장은 성장률과 물가, 재정건전성, 통화정책 지속가능성을 훨씬 냉정하게 가격에 반영한다. 지금 채권시장이 보내는 신호도 단순하지 않다.

핵심 변수는 미국 재정이다. 국가부채는 이미 39조달러를 넘어섰다. 재무부는 올해 상반기에만 6830억달러를 추가 차입해야 한다. 지난해보다 2490억달러 늘어난 규모다. 문제는 공급보다 수요다. 과거와 달리 연준은 더 이상 국채의 최종 매수자가 아니다. 양적긴축을 통해 보유자산을 줄이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의 미국 재정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연기금과 금융회사 역시 장기채 비중 확대에 부담을 갖고 있다. 결국 시장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된다. 이는 채권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채금리는 글로벌 자산 가격의 기준이다.

미국 정부 조달금리가 오르면 기업 자금조달 비용과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함께 상승한다. 지난 4일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5%를 돌파했다. 월가에서는 이를 두고 “파멸(doom)의 문이 열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동 변수도 부담이다.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도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중동전쟁 여파로 일부 항로 운임은 3배 가까이 뛰었다.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도 갤런당 4.55달러까지 상승했다. 2월의 2.98달러와 천양지차다.

연준의 고민은 깊다. 유가발 물가 압력이 다시 살아나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금리인하는 쉽지 않다. 반대로 추가 금리인상 역시 부담이다. 미국정부는 막대한 국채를 차환해야 하고, 지역은행들은 고금리 장기화로 이미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 지금 시장에서는 연준보다 채권시장이 먼저 금융환경을 긴축시키는 모습이 보인다. 중앙은행이 시장 기대를 통제하지 못하면 시장이 새로운 금리질서를 만들기 시작한다.

문제는 증시가 여전히 ‘완벽한 시나리오’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AI 생산성 혁명이 이어지고, 기업 실적은 유지되며, 연준은 결국 금리를 인하하고, 경기침체는 피할 수 있다는 기대가 시장 전반에 깔려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위험이 사라졌다고 믿기 시작할 때다.

지금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함

1979년 폴 볼커가 연준 의장에 취임했을 당시에도 시장은 초기에는 안도했다. 그러나 18개월 뒤 금리는 21%까지 치솟았고, 미국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를 겪었다. 지금이 당시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중앙은행 체제 변화와 재정 스트레스, 공급 충격이 동시에 발생한 시기가 안정적으로 끝난 사례는 많지 않았다.

물론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흐름을 이어갈 수도 있다. AI 혁명이 새로운 성장 사이클을 열 수도 있다. 그러나 채권시장이 보내는 경고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연준 내부의 균열, 39조달러 국가부채, 6830억달러 추가 차입, 배럴당100달러 유가, 그리고 높은 장기금리 등 지금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변수들은 하나같이 무겁다. 지금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도 공포도 아니다. 구조적 위험을 읽어내는 냉정함이다.

박진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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