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합의로 수급 포기한 연금…지급 안돼”
법원 “분할비율, 일방 배우자 100% 가능”
이혼하면서 서로의 연금에 대해 분할연금을 받지 않기로 합의한 이혼 배우자는 연금 일부를 지급받을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국민연금공단은 ‘분할연금 수급권’을 이혼 배우자의 고유한 권리로 봐 이혼배우자에게 연금 일부를 직접 지급해 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A씨가 공단을 상대로 낸 노령연금 분할결정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전처와 33년간 혼인 중 15년간 별거한 이후 서로 상대방의 연금에 대한 분할연금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하는 합의와 함께 이혼했다.
A씨는 2024년 4월 공단으로부터 혼인기간 297개월에 대해 분할연금비율 50%로 하는 분할연금액 공제결정 통지와 함께 2021년 1월분부터 2024년 3월분까지 지급한 분할연금액을 환수한다고 고지받았다. A씨는 2013년부터 노령연금을 받았는데, 전처는 2020년 12월부터 분할연금 수급요건을 충족했다.
A씨는 공단에 분할연금 수급권을 포기하는 내용이 담긴 ‘이혼합의서’를 제출했지만, 거절되자 소송을 냈다. A씨는 재판에서 “전처에게 분할연금 수급권이 발생한다는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혼합의서로 분할연금 수급권이 발생하지 않는 전처에게 A씨의 노령연금 일부를 분할해 지급하기로 한 공단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와 전처가 각자 자필로 서명한 이혼합의서에는 ‘서로 상대방의 연금에 대한 분할연금청구권을 각 포기한다’는 내용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고 짚었다.
이어 “전처가 먼저 A씨에게 합의이혼을 요청했고, 전처 역시 연금을 수급하기로 예정돼 있다”며 “A씨 역시 전처의 연금에 대한 분할연금 지급을 청구할 수 없어, 당시 합의가 전처에게 완전히 불리한 것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법 특례규정은 ‘협의상 또는 재판상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절차에서 이혼당사자의 협의나 법원의 심판으로 연금의 분할 이율에 관해 달리 정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 특례규정을 근거로 이혼 시 재산분할을 하면서 그 분할비율을 일방 배우자 100%, 상대방 배우자 0%로 정하는 것과 같이 어느 한쪽 배우자가 분할연금 수급권을 포기하고 온전히 다른 한쪽 배우자에게 귀속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전처는 법정에서 A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혼합의서를 작성하게 된 것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면서 “이 증언만으로는 A씨의 강요나 협박에 따라 작성된 것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처는 합의서 작성 당시 언니와 동행했고, A씨로부터 분할연금을 포기한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