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리드하는 ‘사무라이’ 기업들
삼성전자·인텔·TSMC 모두 일본 소부장 기업 의존 … 정밀하고 섬세한 기술력 해자 갖춰
반도체 산업의 에코시스템은 크게 설계 제조 장비 소재로 구분되어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설계는 미국이 강하고 제조는 대만 한국 미국 그리고 중국이 리드하고 있다. 그리고 제조 장비 및 소재는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일본은 제조 장비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높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바로 고도의 정밀하고 섬세한 기술력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 통계(WSTS)’에 따르면, 2024년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19.0% 성장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반도체 제조 장비 시장 규모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025년에는 세계 시장 규모가 124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자동차 스마트폰 컴퓨터 냉장고 태양광 발전 시스템 등 현대 생활에 필수적인 많은 제품에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반도체 장비 제조의 시장 점유율은 30%를 넘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도 부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현재의 반도체 장비 제조 업계를 이해함으로써 일본의 반도체 산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무라이 7' 4개사가 반도체 소부장 기업
일본의 반도체 장비 제조의 대표 주자로는 도쿄 일렉트론, 어드반테스트, 디스코, 스크린 등을 들 수 있다. 이 회사들은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일본의 핵심 산업을 이끄는 주요 대표 기업 7개사를 ‘사무라이 7’ 종목이라는 이름으로 선정하였는데 위의 4개사가 이에 포함되었다.
반도체 장비 제조 업체의 최고 리더를 꼽으라면 도쿄 일렉트론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반도체 제조 장비 기업으로 탑 4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ASML,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램 리서치 등과 경쟁하고 있다. 코터(Coater)와 디벨로퍼 (Developer) 시장에서는 90%의 시장 점유율로 세계 1위이다. 2나노미터(nm: 1m의 10억분의 1)이하의 미세 공정 제조 장비 등 최첨단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반도체 제조의 전(前)공정에 필요한 폭넓은 제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데이터, 품질관리, 제조 프로세스, 기술호환성 등 원스탑으로 서비스가 가능하여 반도체 제조 장비의 백화점이라고 불리운다. 이처럼 시스템 일괄로 대응하면서 경쟁사에 비해서 납기 및 리드타임이 짧다. 이 회사의 장비를 거치지 않고 생산되는 반도체는 없을 정도여서 이 회사가 망하면 반도체를 못 만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다. 삼성전자 인텔 TSMC 등이 주된 거래선이며 매출의 8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에 없어서는 안되는 회사이다.
도쿄 일렉트론의 강점은 제조 장비의 높은 생산성이다. 규모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첨단 기술에 대한 연구 개발 투자에 주력하는 것도 커다란 경쟁력이다. 2030년이 되면 반도체 시장이 현재의 약 2배로 커지면서 반도체 제조 공장의 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 일렉트론의 폭넓은 제품 라인업은 향후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세계 최고의 세정능력을 자랑하는 스크린 홀딩스가 있다. 인쇄업의 기술을 포토리소그라피(Photolithography, 빛을 이용하여 기판 위에 패턴을 형성하는 공정), 엣징 등 반도체에 적용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스크린이 잘하는 기술은 ‘표면 처리 기술’, ‘직접 그리기 기술’, ‘영상 처리 기술’인데 이러한 기술들을 확장하여 반도체의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이루어냈다.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세정은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스크린은 웨이퍼 세정 장비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1위 기업이다. 압도적인 세정 능력을 갖추고 있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보다 작은 나노 크기의 불순물을 세계 최고 속도로 제거한다. 시간당 30㎝ 웨이퍼 1200장을 처리할 수 있다. 게다가 웨이퍼에 필요한 약액은 종래에 비해 25%, 물은 30%, 에너지 소비는 40%를 절감하는 친환경 성능이다. 생산 효율이 높으면서 환경부담을 줄이는 등 모든 반도체 제조업체가 갈망하고 있는 것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반도체 테스터 메이커로는 어드반테스트가 있다. 계측 메이커 사업으로 출발했으나 1972년부터 반도체 시험장치 LSI테스트시스템을 발매했고, 현재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테스터 메이커로 성장했다. 시장 점유율이 SoC Tester의 경우 58%, Memory Tester의 경우 53%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2025년 반도체 시장은 주로 AI 관련 수요가 견인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웨이퍼 및 첨단 패키징의 생산 능력이 확대되고 반도체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테스트 항목도 늘어날 전망이어서 어드반테스트의 미래도 밝다.
연마석을 사용한 반도체의 ‘깎기’, ‘자르기’, ‘연마’ 기술에서 세계 최고의 회사가 있다. 첨단 기술의 회사 이미지보다는 일본의 전통적인 장인 정신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디스코라는 회사이다. ‘가치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스스로 만든다’는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제품을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내제화(內製化)에 충실한다. 부품에서 내장 소프트웨어, 사내 시스템, 광고까지 자체 제작이 가능한 모든 것이 내제화 대상이다.
내제화를 통해서 외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공정을 줄이고 개선 아이디어를 즉시 반영한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개량해 나가는 과정에서 쌓인 제조 역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되었고 그 힘이 현재 디스코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NEC 도시바 히타치를 필두로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50% 이상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던 일본은, 현재 그 점유율이 10%미만까지 떨어졌다. 반도체 산업에서 일본은 이제 더 이상 선두주자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일본 제조업의 층층이 쌓인 기술력이 세계의 반도체 산업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반도체 기술을 꾸준히 레벨업시켜 나가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도쿄 일렉트론, 스크린, 어드반테스트, 디스코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반도체 장비 제조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에 반도체 시장의 확대가 예상되는 미래에도 계속 성장해갈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의 개발 및 생산 능력이 국가의 힘과 직결되면서, 반도체 제조회사에 끌려가는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 산업의 부흥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일환으로 반도체 제조 기능을 일본으로 가져오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구마모토의 TSMC와 홋카이도의 라피더스(Rapidus)가 비근한 예이다. TSMC의 일본 진출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총 4개의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며, 약 30개 공급업체를 대만에서 유치할 예정이다. TSMC의 구마모토 공장은 일본에서 반도체 생산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라피더스에 대한 기대도 크다. 라피더스는 설계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두 사례 모두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하에 진행되고 있다. 우선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해외 반도체 제조업체를 국내에 유치하고 동시에 새로운 국내 제조업체의 설립 및 육성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일본의 반도체 에코시스템에 대한 꿈
일본은 2030년까지 반도체 산업 매출을 현재의 약 3배인 15조엔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궁극적으로 최첨단 반도체 에코시스템 전체를 자국 내에 두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아직은 불투명한 그림이다. 하지만 5년 후, 10년 후 세계의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변해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양경렬 Yang GyungYeol
나고야 상과대학(NUCB)
마케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