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세계무역전쟁’ 격화

2025-03-05 13:00:05 게재

미 관세 부과에 캐·멕·중국 보복 … 공급망교란, 한국도 피해 우려

4일(현지 시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부터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해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자 해당 3국이 각각 보복 조치를 취하며 ‘트럼프발 세계무역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세계 경제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공급망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의 ‘관세 무기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추가적으로 더 많은 국가와 품목이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날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수입한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에서 수입한 제품에는 지난달 10%에 이어 추가로 10%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이들 3개국의 무역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전 세계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전통적인 동맹국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 국가와의 기존 무역 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을 무시하고 관세를 강행했다. 중국도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여러 품목에 25% 관세를 부과받아 왔으며, 이번에는 최대 45%의 추가 관세가 부과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관세 부과의 명분으로 마약 단속을 들고 있다. 그는 ‘좀비 마약’이라고 불리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이 3개국을 통해 미국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펜타닐 유입을 차단할 때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무역 도구인 관세를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캐나다는 즉각 300억 캐나다 달러(약 30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오늘 미국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캐나다에 대해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며 “미국의 관세는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또 만약 미국이 계속해서 관세를 부과할 경우 21일 후 추가로 1250억 캐나다 달러(약 125조원) 규모의 보복 관세를 시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합병하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우리는 절대 51번째 주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멕시코는 오는 9일 구체적인 보복 품목을 발표할 예정이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의 이번 결정에 대해 “모욕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반박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예고했다.

중국은 10일부터 닭고기, 밀, 대두 등 일부 미국산 농산물에 대해 10~1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처럼 미국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인 농산물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이번 보복 조치 외에도 미국산 원목 수입을 중단하고, 미국 방산업체 10곳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기업’으로 지정하며 수출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요지부동이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캐나다가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는 같은 양만큼 즉시 상호관세를 인상할 것”이라며 3개국의 보복에 대한 재보복을 경고했다.

미국의 이번 관세 부과는 한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멕시코에는 삼성전자, LG전자, 기아, 현대모비스 등 400여개 한국 기업이 생산 기지를 두고 있는데, 이들 기업은 멕시코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해왔다. 그러나 이번 관세 부과로 인해 이들 기업은 원가 상승과 함께 수출 경로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미국의 관세 장벽에 막힌 값싼 중국산 제품이 동남아와 한국 등 주변국으로 몰릴 경우 한국 기업들은 저가 물량 공세에 시달리게 될 우려도 있다. 2023년 미 중간재 수입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공급 과잉 분산은 글로벌 시장 균형을 교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3개국 간의 무역 갈등은 단기적인 타격을 넘어 장기적인 영향도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2일부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예외 없이 25%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며, 추가적으로 자동차·반도체·의약품 등 다양한 품목에 25% 이상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또한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구리와 원목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시작했으며, 이를 기초로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도 크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트럼프의 관세 장기화 시 미 경제성장률이 1%p 하락할 것”이라며 캐나다·멕시코 등은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더욱 큰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될 전망이다.

뉴욕연방준비은행 존 윌리엄스 총재는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재점화 가능성”을 경고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이라 비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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