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광화문광장 ‘감사의 정원’, 재고해야 한다

2025-03-06 13:00:04 게재

서울시가 지난 달 광화문광장에 ‘감사의 정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6.25 전쟁에 참전하거나 의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 22개국에 대한 감사와 보은의 의미를 새길 것이라고 한다.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도움을 준 나라들에 고마움을 전하자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구상이 오늘 한국의 시대정신과 국민정서에 맞는지는 냉정히 따져볼 일이다.

광화문광장은 서울을 넘어 우리나라, 한반도의 중심을 표상하는 공간이다. 미래한국의 꿈을 세계로 발신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이 국가상징 거리에는 한국의 국격과 정체성, 비전에 맞는 조형물을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 광장 한 켠에 6.25의 기억을 소환하겠다는 서울시의 이번 발표는 생뚱맞고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3년 동족상잔의 참화를 참전국에 대한 보은의 정념으로 굴절시키거나 적의에 찬 진영론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성찰할 점은 그들이 우리를 도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강대국정치의 격랑 속에서 비극을 막지 못하고 외세 개입을 불렀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굳이 참전국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했다는 식의 생각을 강조하고, 이런 논리로 우리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대보단’의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까닭은?

역사 사상의 추이는 국가의 성쇠를 반영한다. 그래서 국가가 흥기할 때, 새로운 도약을 꿈꿀 때 역사를 새로 편찬하는 관례가 생겼다. 국민적 정체성과 자부심, 자신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삼국유사같이 국난기에 역사서를 편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임진왜란 후 선조는 이순신과 의병의 공훈을 깍아내리며 명이 조선을 구했다는 소위 ‘재조지은’(再造之恩)의 논리를 반복했다. 지금은 그같은 자비사관(自卑史觀)을 되풀이하는 대신 자주와 평화의 의지를 현창할 시간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역사사상이 바뀌어야 하고, 국민들의 역사감각도 진화해야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40년도 안 돼 조선은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재앙을 맞았다. 조선 조야는 북벌을 내세우며 절치부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힘의 한계를 절감한 조선은 명이 망한 지 한 주갑(周甲)이 되는 1704년 창덕궁 경내에 대보단(大報壇)을 축조하고 명 만력제, 숭정제 등을 제사지냈다. 일종의 정신승리법이었다.

민간에서는 송시열의 제자들이 만동묘(萬東廟)를 지어 흐름에 가세했다. 나라를 구해준 명에게 ‘한없는’ 감사를 표시하고 그 은혜를 갚겠다는 명분이었다.

설치 당시에도 중국 황제를 타국에서 제사한 예가 없다는 등의 반대가 있었지만 정작 대보단이 철거된 것은 1908년에 이르러서였다. 대보단에서는 청일전쟁 때까지, 만동묘에서는 심지어 1930년대까지도 제향이 이어졌다고 한다. ‘은혜로운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迎恩門)을 역사 속에 묻은 것이 1895년이었으니 청으로부터 홀로서기 역정이 이토록 고단하였던 것이다.

1995년 김영삼정부는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결정했다. 영은문 철거 백년 만에 비로소 우리 상징공간에서 중국 일본과의 칙칙한 기억들을 말끔히 치워버린 것이다. 외세의 도움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정작 ‘우리’를 잃어갔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시는 지난해 광화문광장에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려 했다가 철회한 적이 있다. 지나친 애국주의라는 비판 때문이었다. 국민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국가상징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사대주의적 ‘작품’을 들고 나왔다. 반공 국가주의적 발상이란 점도 문제지만 자주를 향해 줄달음쳐온 역사흐름을 되돌린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세계가 격동하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이를 뒷받침할 전략을 모색하는 데도 손이 모자랄 판이다. 미국은 가장 중요한 우방이지만 미국을 재조지은을 베푼 나라로 떠받드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6.25 참전국도 마찬가지다. 과공비례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면 비루함이 된다.

시가 나서서 특정 국가만을 도드라지게 찬양하고, 국민들에게 우리가 그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자비의 역사관을 조장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외교적으로도 미묘한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감사의 정원, 전쟁기념관이 더 적절

“어떤 문제도 그 문제를 일으켰던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시는 이제라도 광화문광장에 대한 여태까지의 관성적 사고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철학을 상상해 내야 한다.

광화문광장은 마땅히 사대와 적대, 배제가 아닌 자주와 화해 포용 그리고 한국의 평화번영 의지를 세계에 과시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감사의 정원이 꼭 필요하다면 6.25관련 전시 조형물이 모여있는 전쟁기념관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광화문광장에는 더 큰 미래에의 의지를 오롯이 담아내야 한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