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우클릭에 ‘진보의 중도화’…“중도 과포집 오판 경계”
1월초 26%였던 진보비중, 18%로…중도비중은 32%→45%
민주당 지지층도 진보 33%, 중도 49% … 4050·호남서 뚜렷
“지지 정당·인물 따라 이념성향도 바뀌는 ‘당파적 배열 현상’”
금투세 폐기·상속세 도입 의견, 민주당 결정 전후로 크게 달라져
더불어민주당 지지층들의 이념성향이 진보에서 중도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주관적 이념성향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인물을 따라 같이 옮겨 가는 ‘당파적 배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진보진영의 비중이 줄고 중도층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진보의 중도화’로 해석된다.
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KPI뉴스 의뢰)가 매주 실시한 여론조사를 종합한 결과 진보진영의 이념성향이 ‘중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의 ‘우클릭’과 이재명 대표의 ‘중도 보수’ 발언이 이를 부채질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들어선 이후 금융투자소득세 과세 폐기,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고자산가의 상속세 부담 완화, 반도체 기업의 52시간제 예외 확대 논의 등 ‘우클릭 행보’를 이어갔고 지난달 중순에는 급기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유튜브와 방송에 나가 ‘민주당은 중도보수정당’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민주당 의원들 중심으로 ‘민주당은 중도보수’라는 커밍아웃(자기 고백)이 이어졌다. 중도에 있으면서 때에 따라 좌로도, 우로도 갈 수 있다는 유연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진보진영이나 민주당 지지층들의 ‘중도 이동’ 현상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이달 첫 주(3월 2~3일,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주관적 정치성향을 보면 진보진영이 18.1%로 20% 아래로 떨어졌다. 반면 중도는 45.0%로 뛰어올랐다. 보수진영은 31.1%였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비율이 13.0%p 차이를 보였다. 그러면서 중도층은 가파르게 증가해 45.0%까지 상승했다.

정치성향 비중의 변화는 주로 진보와 중도쪽에서 나왔다. 진보진영 비중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안이 통과된 이후인 1월부터 줄기 시작했다. 1월 첫 주(1월 5~6일, 만 18세 이상 1000명)에 진보 비중은 26.9%였고 한 달 뒤인 2월 첫 주(2월 2~3일, 만 18세 이상 1000명)엔 22.7%로 떨어졌다. 2월 말엔 20.6%로 낮아졌다.
그 사이 보수진영의 비중은 34.3%에서 30.7%로 떨어졌다가 33.1%로 상승해 큰 변동이 없었다. 반면 중도 비중은 32.6%에서 42.1%. 40.4%로 올라섰다. 40%대를 공고하게 다지는 분위기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2월 들어 보수층은 주춤하는 가운데 ‘진보층의 중도화’ 현상이 뚜렷하다”며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과 감세 정책 등 우클릭 행보가 적극 지지층의 호응, 즉 ‘당파적 배열’이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실제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호남과 40대, 50대의 중도층 비중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40대의 경우 1월 첫 주엔 진보 30.9%, 중도 30.6%였으나 3월 첫 주엔 진보 19.7%, 중도 52.4%로 급상승했다. 50대에서도 같은 기간에 진보 30.5%, 중도 37.3%에서 22.0%, 51.0%로 급변했다. 호남지역만 보면 진보 36.8%, 중도 32.2%에서 22.0%, 44.6%로 ‘진보층 축소와 중도층 확대’가 확연히 드러났다.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는 1월 첫 주엔 절반 이상인 51.6%가 진보성향을 보였다가 3월 첫 주엔 33.5%로 떨어졌고 중도비중은 33.0%에서 49.7%로 바뀌었다.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 ‘진보’보다 ‘중도’가 크게 많아진 셈이다.
안 대표는 “ARS(자동응답전화설문방식)는 적극 지지층이 많이 참여하는 경향이 있어 당파성을 잘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ARS방식을 택하고 있는 리얼미터(에너지경제 의뢰)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리얼미터 1월 첫 주(2~3일, 1001명) 조사를 보면 보수 29%, 중도 36%, 진보 26%였다. 2월 첫 주(6~7일, 1002명)엔 30%, 38%, 24%였고 넷째 주(26~28일, 1506명)엔 29%, 42%, 20%로 ‘중도 증가, 진보 감소’ 추세로 바뀌었다.
전화면접 방식인 한국갤럽에서는 상대적으로 급변동이 드러나진 않지만 진보진영의 중도화가 다소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 1월 호남지역은 중도(26%)보다 진보(44%)성향이 월등히 많았지만 2월엔 36%로 같았다. 40대와 50대에서도 1월엔 진보비율이 높았으나 2월엔 40대의 경우 역전됐고 50대도 근소하게 접근했다.
정책에서도 ‘원칙’보다는 ‘지지 세력’을 찾아 가는 모습이 드러났다.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공정과세 원칙을 고수하며 금융투자소득세 과세를 주장할 때는 진보진영의 금융투자소득세 과세에 대한 찬성 비율이 절반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 과세 폐기’를 언급하면서 이에 동조하며 ‘폐기’쪽으로 기울었다. 리서치뷰와 참여연대가 공동으로 매월 실시하는 세금인식조사에서 지난해 9월말에 진보층의 62%가 금융투자소득세 폐기에 반대했으나 민주당이 당론으로 ‘금투세 폐기’를 결정하면서 10월말 조사에서는 진보층의 반대의견은 49%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전체적으로 폐지 반대(38%)와 찬성(40%)이 엇비슷해졌다.
최근 들어 진보진영 소수정당들과 시민단체들이 민주당의 ‘상속세 공제한도 확대(10억원→18억원, 상속세 인하)에 대해 ‘부자감세’라며 비판하는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38%가 ‘상속세 인하’ 의견을 낸 것도 주목된다. 이 수치는 ‘높여야 한다’(20%)나 ‘현행유지’(28%)보다도 높은 것이다. 진보층에서도 상속세 인하(43%) 답변이 상향(21%)이나 유지(25%)보다 많았다. 보수층이나 중도층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이다.(한국갤럽, 2월 25~27일, 1000명)
진보층과 민주당 지지층의 ‘중도화’는 중도층 여론을 읽는 데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실상 민주당 지지층이 이동해 혼합된 중도층의 여론이 ‘침묵하는 중도층’의 판단을 과소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비교적 정치 고관심층의 참여율이 높은 ARS 조사에서 ‘당파적 배열’이 뚜렷한 가운데 ‘진보층의 중도화’ 현상은 예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최초의 사례로 추정된다”며 “중도층 분석할 때 현재의 중도층 의견을 과거와 같이 진보, 보수가 아닌 스윙보터나 캐스팅보터로서의 중도로 보면 오판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1000명 유권자 대상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1500명대는 95% 신뢰수준에서 ±2.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