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17 우이도 달뜬 몰랑길
달이 뜬 언덕을 따라 걷는 옛 길
섬 속의 사막, 우이도 사구(沙丘)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우이도 사람들은 ‘산태’라 부르는 사구….
그 옛날 돈목마을 총각과 성촌마을 처녀가 사랑에 빠졌다. 둘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산태 그늘 아래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총각이 약속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어선을 타고 나간 총각이 풍랑에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처녀는 슬픔을 못 이겨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 후 산태에는 애달픈 전설이 깃들었다.
죽은 총각은 바람이 되고 처녀는 모래가 되었다. 그래서 두 연인이 만나 사랑을 나눌 때마다 산태에는 모래바람이 휘몰아친다.
우이도에는 백섬백길 45코스 달뜬몰랑길이 있다. 달뜬몰랑길은 진리에서 예리를 거쳐 산태가 있는 돈목까지 이어지는 5.7㎞ 옛길이다. 달뜬 몰랑이란 달이 뜬 언덕이란 뜻이다.
진리에는 조선시대 거의 유일하게 4년간이나 동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했던 홍어장수 문순득(1777-1847)의 생가가 있다. 또 자산어보의 저자 정약전의 유배 터도 있다.
문순득은 1801년 12월 홍어를 싣고 가다 풍랑을 만나 표류해 유구국(琉球國, 오끼나와)까지 흘러가 3개월을 머물다가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중국행 배를 탔다. 하지만 다시 풍랑을 만나 여송국(呂宋國, 필리핀)의 마닐라까지 표류했다. 문순득은 여송국에 9개월을 머물다가 마카오 광둥 난징 베이징을 거쳐 1805년 1월 고향 우이도로 돌아왔다.
역사 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문순득의 표류담이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 것은 정약전 덕분이다. 정약전은 흑산진 관할이던 흑산도와 우이도를 오가며 유배 생활을 했다. 마침 문순득이 귀향한 1805년에는 우이도에 살고 있었다.
문순득은 표류담을 전했고 정약전은 이를 기록해 <표해시말(漂海始末)> 이란 책으로 남겼다. 표해시말(漂海始末)>
책에는 문순득이 경험한 외국의 풍속과 생활상, 언어 등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오키나와 지역의 장례문화와 전통의상에 대한 기록도 있고, 당시 필리핀 사람들이 닭싸움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리마을 입구 바닷가에는 축조된 지 300년 남짓 된 옛선창도 있다. ‘우이선창’이란 이름을 가진 이 선창은 1745년 3월(영조21년)에 완공됐으니 아마도 원형이 남은 이 땅의 가장 오래된 옛 선창이지 싶다.
우이선창은 포구와 방파제, 배를 만드는 선소 기능까지 했었다. 요즘 만드는 방파제들도 큰 태풍 한 번이면 무너지기 일쑤인데 3백 년 동안이나 유지됐다는 사실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데도 고작 전라남도기념물일 뿐이다.
우리나라 해양사의 독보적 유적이니 국보나 보물로 지정해야 마땅하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