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홈플러스와 국민연금의 미심쩍은 행보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의 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로 유통업계와 금융사, 일반 소비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홈플러스는 연간 매출액 7조원에, 2만명의 직영직원과 협력업체를 포함해 10만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업체다. 납품업체만 1800여개, 임차인은 8000곳이다. 지난 4일 서울회생법원은 회생신청 11시간 만에 회생절차개시결정 및 사업계속을 위한 포괄허가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는 영업과 관련한 상거래채권은 정상적으로 변제하되 이자 등 금융비용이 발생하는 금융채권은 상환이 유예됐다.
법원이 미래의 위험을 막기 위해 ‘선제적 구조조정’으로서 회생신청을 한다는 홈플러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 결정으로 협력업체와 일반적인 상거래 채무는 회생절차에 따라 전액 변제되며 임직원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될 예정이다.
법정관리 신청 직전 RCPS 자본전환 의혹
홈플러스측은 부동산 등 자산이 4조원이 넘기 때문에 금융채무가 2조원이라도 이 고비만 넘기면 정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융채권자들은 원금 손실 우려로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홈플러스의 금융부채 2조원 중 메리츠금융그룹이 담보채권(신탁) 약 1조2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메리츠는 홈플러스 점포 등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있기 때문에 원금 회수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드대금채권을 기초로 발행된 유동화증권(ABSTB), 기업어음(CP), 전단채 등 약 6000억원 규모의 금융채권은 원금 손실이 우려된다. 이 금융채권은 대부분 일반 개인과 법인을 대상으로 소매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가장 후순위 채권인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투자한 국민연금 손실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 손실이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국민연금은 7일 “2015년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프로젝트펀드를 통해 RCPS 5826억원, 블라인드펀드를 통해 보통주 295억원 등 6121억원을 투자했으며 현재까지 리파이낸싱과 배당금 수령을 통해 RCPS 3131억원을 회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자 등을 계산하면 국민연금이 돌려받아야 할 돈은 훨씬 많다. RCPS는 배당률 3%와 연복리 9%의 만기이자율 조건으로 발행돼, 앞으로 8000억원 가까이 더 받아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홈플러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7000억원이었던 RCPS 부채는 2024년 말 1조600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은 “추가 설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RCPS를 회계상 부채에서 자본으로 전환했는데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는지도 논란이다. 이 RCPS는 홈플러스가 아닌 홈플러스 지분을 보유한 특수목적법인(SPC) 한국리테일투자가 발행했으며 홈플러스와 한국리테일투자는 지난달 상환조건 변경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RCPS가 ‘부채’가 아닌 ‘자본’이 되면 기업이 자산매각 등을 통해 채권자에게 부채를 상환할 때 RCPS 주주는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한때 국민연금도 RCPS 자본전환에 동의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은 RCPS 발행조건은 변하지 않았고 변제순위가 밀리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국민연금이 개별투자 건에 대한 수치나 입장을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시장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보유 RCPS가 자본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해도 대규모 손실은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탓이다.
국민연금 손실 우려…사기의혹 수사해야
홈플러스는 2월 28일자로 CP와 단기사채 신용등급이 A3에서 A3-로 하향됨에 따라 금융조달 어려움이 예상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RCPS의 선제적 자본전환, 국민연금의 이례적 태도, 11시간 만에 초스피드로 법정관리 개시를 결정한 법원 등 미심쩍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홈플러스 마트노조는 “사측은 RCPS가 자본으로 전환돼 부채비율이 낮아졌다고 발표했는데 본래 회생 절차에서 RCPS는 후순위 채권으로 분류된다”며 “자본전환에 따라 RCPS의 채권 순위가 변경됨에 따라 MBK가 회생을 사전에 준비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이 이 같은 의혹에 연루됐다면 대단히 큰 문제다. 홈플러스와 국민연금은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수사당국도 부당한 거래가 있었는지 의혹을 밝혀야 한다.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생절차 직전까지 CP와 전단채를 발행했다면 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의혹만으로도 수사당국이 나설 필요성이 있다.
이선우 기획특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