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임대아파트 첫선…‘이주 대책’ 관건
세대 수 작은 곳, SH 빈집 활용 가능
대규모 단지 역부족, 이주단지 필요
“지금 사는 집을 공짜로 전면 리모델링 해준다기에 긴가민가 했어요. 새로 고친 집에 들어와보니 정말 좋네요.”
서울시가 10일 리모델링을 통해 임대아파트 품질을 개선한 첫 모델을 선보였다. 서대문구 홍제동 유원하나 아파트는 10일 첫 입주자를 맞이했다. 지난 2월 준공을 마치고 이날부터 120세대가 재입주를 시작한다.
창호가 얇아 단열이 취약했던 아파트 주민들 최대 고민은 겨울철 빨래였다. 집이 비좁아 베란다에 세탁기를 둘 수 밖에 없는데 물이 얼었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 세탁 금지 안내방송이 나오기 일쑤였다. 임차인대표 임 모씨는 “서울시에서 이중창으로 바꿔주고 세탁기를 빌트인으로 설치해줬다”고 반가워했다.
홍제유원하나 아파트는 1984년 지어진 노후 아파트다. 전체 6개동 가운데 1개동이 임대아파트인 복합단지이며 이번에 1개동 150가구를 모두 리모델링했다.
주민들은 평균 9개월간 서울시(SH)에서 마련한 인근 3개 구로 이주했고 이사비는 전액 지원됐다. 재입주 후 임대료는 인상되지 않는다. 시는 올해 안에 3개 아파트를 추가로 지정해 리모델링에 나설 계획이다.
◆품질 떨어진다는 인식 깬다 = 서울시는 임대아파트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배경은 두가지다. 낡고 오래돼 주거여건이 열악하다보니 빈집이 발생한다. 최소한의 주거권은 확보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임대주택 확보다. 주거 취약층이 증가하고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필요한 임대주택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재건축이 예정된 노원구 하계5단지는 5층에서 49층 고층아파트로 다시 짓는다. 임대아파트는 작고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 전용 59㎡ 376세대, 전용 84㎡ 182세대 등 중형 평형 비중을 높였고 자재도 고급화한다.
관건은 이주대책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임대아파트 품질개선은 홍제유원 같은 리모델링과 아예 다시 짓는 재건축 등 두가지 방식으로 추진된다. 시에 따르면 리모델링과 소규모 단지는 이주계획 수립이 어렵지 않다. SH가 보유한 빈 집을 활용할 수 있고 이주 기간도 1년 미만으로 짧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1000세대 이상 넘는 대규모 임대단지를 재건축 할 경우 빈집 활용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SH가 관리하는 서울 임대아파트 34단지 가운데 21곳이 900세대 이상 단지이며 이중 4곳은 2000세대가 넘는다.
서울시가 갖고 있는 이주계획은 비어있는 임대아파트를 활용하는 방안과 매입임대를 통해 충당하는 방안 단 두 가지다. 하지만 재건축의 경우는 이주기간이 3년 가까이 길어질 뿐 아니라 대규모 단지일 경우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임시 방편으로 대규모 사업을 실행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때문에 임대아파트 재건축이 효과를 거두려면 이주단지 건립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는 현재까지는 공사비 사업지연 등 이유를 들어 이주단지 건립 방식은 택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비업계와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임대아파트 재건축을 통해 공공임대 물량을 늘려 취약층 주거안정에 기여할 수 있고 고층 재건축을 통해 일반분양까지 늘릴 수 있다면 서울의 주택공급 물량을 확보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계획 분야 한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제를 풀었다 묶었다 하기보다 실물인 주택공급 양을 늘리는 방안이 주택가격 안정에 보탬이 될 것”이라며 “모듈주택, 단지별이 아닌 동별 재건축 등 최신 건축 기술과 전략적 접근을 통해 임대 재건축 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