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교과서 도입, 기대와 우려 사이 균형 찾기
정치권 갈등에 교육현장 혼선 … 교사·학부모 의견 분분, 디지털 교육 효과 검증 필요
새학기, 여러 변화가 있다. 그중 하나가 디지털 교과서다. 올해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에게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줄여서 AIDT가 도입된다. 교육 당국은 학생 개개인의 맞춤형 교육과 교실 수업 혁신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한데 이와 다른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치권에서도 AIDT와 관련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고 문제는 당사자인 학생이나 학부모가 이런 소란스러움 속에서 AIDT가 무엇인지, 수업에서 어떻게 쓰일 것인지,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는 데 있다. 당장 학교에서 만날 AIDT의 실체와 찬반 양측의 입장을 짚어보며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새 학기 첫달이 저물어가는 가운데 교육계 최대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 도입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교육 당국은 학생 맞춤형 교육과 수업 혁신을 내세우지만 현장의 준비 부족과 정치권 갈등, 높은 구독료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새 학기 시작됐지만 단말기 보급은 지연 = AIDT는 단순히 교과서를 전자책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탑재해 참고 자료와 다양한 교수·학습 콘텐츠를 제공하는 디지털 교과서다. 풍부한 이미지와 동영상은 물론 가상현실 기반 실감형 콘텐츠로 학습 흥미를 높이고 평가 문항을 통해 취약 부분을 집중하여 보강할 수 있다.
AIDT는 윤석열정부의 국정 과제이자 3대 교육 개혁의 핵심인 ‘디지털 교육 혁신’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영어 수학 정보 과목에 우선 도입하고 2028년까지 국어 사회 과학 등 교과에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AIDT 도입은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 시내 초·중·고교 1317곳 중 383개교(29%)가 AIDT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단말기 ‘디벗(디지털+벗)’의 수급에 차질이 생겨 실제 수업 활용은 4월 초·중순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예산 확보가 늦어지면서 기기 제조 또한 지연됐다.
AIDT를 수업에 사용할 예정이었던 한 교사는 “연구는 고사하고 새 학기 시작 직전임에도 실물 단말기를 보지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교육부는 “1~2주 정도는 서책형으로 수업할 수 있으니 지장은 없다”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준비가 미진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AIDT의 가격과 품질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올해 초에는 높은 가격으로 논란이 됐다. AI 디지털 교과서 제작 업체가 연간 구독료를 10만~14만원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협상에 나서 지난 3월 5일 교과서별로 최종 구독료는 2만9750원~5만7500원으로 확정됐다.
클라우드 이용료는 연간 1만원(학기당 5000원)이다. 영어, 수학을 최소로 계산하고 정보 과목 비용 5만원을 포함하면 18만9000원에 달한다. 종이 교과서가 권당 1만~2만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비싼 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AI 디지털 교과서 ‘의무 도입’ 시 6개월 분권 구독을 가정했을 때 4년간 총구독료는 약 4조4922억원에 달한다. 현재 AIDT 및 디지털 교육 자료 구독료는 정부나 시도교육청에서 지원한다. 막대한 예산 지원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학부모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교육감 고발까지, 정치권으로 논란 확산 = AIDT를 둘러싼 잡음은 학교 밖에서도 거세다.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은 AIDT 선정 강요, 교육청 압박 등 일선 학교의 선정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을 대구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교원 단체와 일부 교육청에 따르면 교육부가 AIDT 채택률이 낮은 지역의 디지털 교육 혁신 특별교부금(특교)을 감축·삭감하겠다고 통보했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주도로 진행된 초·중등교육법 개정과 AIDT가 ‘교과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격하된 후폭풍이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AIDT 선정 현황’에 따르면 대구(100%) 강원(49%) 충북(45%) 경북(45%) 경기(44%) 제주(41%) 부산(35%) 충남(25%) 서울(24%) 전북(21%) 인천(20%) 대전(20%) 울산(15%) 광주(12%) 전남(9%) 세종(8%) 등 전국 평균 채택률은 33%였다. 일선 학교 10곳 중 3곳이 선정해 정부의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교육부는 채택률이 공개된 후 광주 전남 세종 울산 인천 등 채택률이 낮은 6개 시·도교육청에 AIDT 채택률에 따른 디지털 튜터 사업비 감액을 통보했다. 디지털 튜터란 AIDT 사용과 학생 개별 학습을 돕는 보조교사다.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자율’이라고 했지만 예산을 내세워 교육청과 일선 학교를 압박했다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예산으로 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교육 자치를 훼손하는 비민주적인 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AIDT 도입 과정에 대한 감사 요구가 야권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요구안에서 “교육부가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과정에서 다수의 시민 사회 단체, 교사, 학부모, 학생이 제기한 우려를 무시하고 강행한 점에 대해 철저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AIDT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 교육 전문가들은 AIDT가 미래 교육을 위한 필수적 도구인지, 아니면 충분한 검증 없이 도입된 위험한 실험인지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개별 피드백으로 맞춤형 교육 가능 = 최근 AIDT 논란은 주로 도입 과정에서 생긴 잡음에 기인한다.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교사들은 학습 효과를 의심한다. 다양한 자료로 흥미를 유발하지만 고교의 심화 학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디지털 기기를 계속 접하면서 집중력이 저해된다고 우려한다.
서울교사노조 소속 교원 5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0%가 AIDT 도입에 반대했다. 특히 ‘학생이 개별 단말기와 이어폰 등을 사용해 학습해야 한다면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집중력 저하(40%), 교사와 학생 또는 학생 간 소통 부족(32%), 학습 격차 심화(17%), 학교 출석 불필요(7%) 등 부정적인 답변이 쏟아졌다.
서울 시내 고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A교사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면서 일선 교사는 디지털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AIDT를 살펴보면 여러 교사가 이미 사용 중인 AI 코스웨어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B교사는 “AIDT의 보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학습 시간, 패턴, 문제 풀이 현황 등 학생의 상세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데 유출이나 무단 사용 같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서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는 문해력 저하를 이유로 디지털 교육 정책을 철회했는데 우리는 너무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AIDT를 긍정적으로 보는 교사도 적지 않다. 학생이 각자의 수준에 맞게 학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라고 주장한다. 특히 평가 리포트 프로그램은 학생의 역량을 확인해 피드백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C교사는 “최근 고교 수업에서는 단순한 강의 외에 다양한 활동이 진행된다”며 “학생이 주제를 선정해 탐구하는 과정을 보고서나 발표자료로 만드는 데 AIDT를 활용하면 진행 과정을 확인할 수 있고 단계마다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D교사는 “AIDT는 개인의 학습 수준에 맞게 평가 문항이나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특히 수업에서 소외되기 쉬운 중하위권 학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호평했다.
◆학부모가 보는 AIDT, 디지털 기기 사용 확대에 반감 커 = 학부모는 AIDT에 대한 반감이 크다. 국회 교육위원회 강경숙 의원의 설문조사 결과 7만4243명 중 약 85.0%인 6만3107명이 AIDT 도입에 반대했으며 그중 ‘매우 반대’가 75.2%에 달했다.
또한 교육부가 밝힌 ‘AIDT 도입이 학생 능력과 수준에 맞게 학습 기회를 지원해 1:1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는 의견에 81.2%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AIDT가 학습 흥미와 참여도를 높일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74.8%가, ‘교육 격차가 해소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90.75%가, ‘사교육이 감소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92.14%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다수의 학부모는 디지털 기기를 수업 시간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데 거부감이 크다. 이미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장시간 노출되어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교과서까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의 일부 학교는 학부모 민원으로 디벗을 학교 밖으로 가져갈 수 없게 했다.
AIDT 논쟁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도입 과정에 대한 감사 요구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다 AIDT가 도입된 후의 상황을 예단하기 힘들어서다. 다만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된 만큼 최대한 효과를 끌어낼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교육 전문가는 AIDT 도입 과정에서 배제했던 교사와 학생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한편, 과거 사례에서 보완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활용해 본 비율은 38.2%에 불과했다. 학생용 단말기와 네트워크 설비 등 환경 구축 미비, 기존 자료와의 차별성 부족, 활용 방법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 주된 이유였다.
김기수·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