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케빈 워시, 신속한 양적긴축 쉽지 않다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가 지명되자 시장은 한때 ‘긴축발작’을 일으켰다. 그가 양적완화(QE)를 강하게 비판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완화적 통화(easy money)의 종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주식과 채권이 동반 하락했고, 금·은·비트코인까지 급락했다.
그러나 공포는 오래가지 않았다. 시장은 워시가 무조건적인 매파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의 유동성과 재정구조가 급격한 긴축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결국 핵심은 인물이 아니라 구조다. 유동성과 재정의 제약이 통화정책의 선택지를 규정한다.
월가 거물 드러켄밀러, 워시는 “실용주의자”
현재 미국의 유동성 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제약적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연준은 단기 자금시장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매월 약 400억달러 규모의 단기국채를 매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동성 핵심지표인 연준의 지급준비금은 의미 있게 늘지 못하고 있다. 시중은행이 예치한 지급준비금은 최근 2조9000억~3조달러 수준으로 코로나19 당시 4조~5조달러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 양적긴축과 국채 만기상환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문제는 총량만이 아니다. 유동성의 분포가 더 중요하다. 미국 재무부 일반계정(TGA) 잔고는 정부가 보유한 현금을 의미한다. 만성적 재정적자 구조에서 TGA 잔고의 증가는 곧 국채 발행 확대를 뜻한다. 2025년 7월 약 3000억달러 수준이던 잔고는 10월 9800억달러로 급증했다. 약 6800억달러가 정부로 흡수된 셈이다. 최근 주간 평균도 9000억달러를 웃돈다. 이는 민간 유동성이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총량보다 분포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미국의 유동성 여건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재정구조 역시 통화정책의 선택 폭을 좁힌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의 국가부채는 38조달러를 넘어섰고 연간 이자지출은 1조2000억달러에 달한다. 평균 부채이자율 3.36%를 감안하면 금리상승은 곧바로 재정 부담 확대로 이어진다. 이미 연방예산에서 이자지출(13.9%)은 국방비(12.1%, 약 9000억달러)를 추월했다. 추가적인 금리상승이나 대차대조표 축소는 재정 지속가능성에 직접적인 압박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대차대조표를 급격히 축소할 경우 지급준비금은 빠르게 임계 수준에 접근할 수 있다. 과거 초단기 레포시장(Overnight Repo Market)의 불안 사례가 보여주듯 준비금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금융시장 변동성은 급격히 확대된다. 국채 발행이 계속 늘어나는 구조를 고려하면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유동성 흡수 속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시장 불안을 누그러뜨린 데에는 월가 거물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발언도 한몫했다. 그는 워시를 “실용주의자”로 규정하며, 경제성장이 반드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는 고정관념을 공유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1990년대 IT혁명에 따른 생산성 확대를 근거로 완화적 금리정책을 유지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접근법과 닮아 있다. 워시 역시 “인공지능(AI)이 구조적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이른바 ‘그린스펀식’ 접근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트럼프 경제팀이 선호해온 방향이기도 하다. 드러켄밀러는 “베센트와 워시는 반드시 함께 일할 것”이라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공조를 강조했다. 이는 일방적인 양적긴축 시나리오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상당 부분 희석시켰다.
미국 시장 유동성, 급격한 긴축 감내할 체력 충분치 않아
결국 문제는 구조적 제약이다. 워시가 5월 취임하더라도 현실을 무시한 양적긴축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유지하고 AI 투자가 활발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기반에는 제한된 유동성과 막대한 재정 부담이 놓여 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공조가 반복해서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시장 역시 이를 간파했다. 초기의 ‘긴축공포’는 구조적 제약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완화됐다. 미국의 유동성은 겉보기보다 풍부하지 않으며, 정치·재정·금융구조 또한 급격한 긴축을 감내할 만큼 충분한 체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강한 긴축을 용인할 정치적 유인은 크지 않다. 최근 보궐선거에서 공화당이 연패한 점도 부담이다. 최소 올해까지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모두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